"부모 잘못 만난 죄, 아들 살려달라"…법정 울린 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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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0.08. 오후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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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스1) 김기열 기자 = 지난 7일 남편이자 아버지를 살해한 모자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울산의 한 법정이 온통 눈물바다가 됐다.

법정에 입장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흐느끼며 오열하던 어머니는 끝까지 "모든 것은 제 잘못"이라며 "부모를 잘못 만난 아들은 죄가 없다. 부디 아들은 살려달라"며 재판장에게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아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하자 법정 여기저기에서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들도 "가정을 못 지킨 자신이 원망스럽고 아버지, 누나에게도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 40년간 자신을 괴롭힌 남편의 폭력도 참을 수 있었던 어머니는 끝내 자식을 지키지 못한 것이 한스러워 자신을 책망했다.

재판부는 이날 아버지 C씨(69)를 존속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아들 B씨(41)에게 징역 7년을, 남편살해 혐의인 어머니 A씨(65)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 5월 12일 울산 남구 신정동 한 아파트에서 C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40년간 A씨에게 가정폭력을 휘두른 C씨는 이날도 10여년만에 휴대폰을 바꾼 부인에게 "돌대가리 같은 X, 니 같은게 무슨 2만5000원짜리 요금제 내면서 새 폰쓰냐"는 폭언과 함께 폭력을 휘둘렀다.

이를 말리던 아들은 엄마의 목을 조르는 아버지에게 주먹을 휘둘러 쓰러뜨린 뒤 베란다의 둔기로 아버지 머리를 내리쳤다.

쓰러진 아버지를 본 아들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어머니 역시 자신이 남편을 살해한 증거를 만들기 위해 아들의 폭행으로 쓰러진 남편 입에 10여년전 남편이 사둔 염산을 부었으나 아직 의식이 남아 있던 남편이 고개를 돌려 실패했다.

이후 몇 차례 시도가 다시 실패하자 급기야 어머니는 아들이 쓴 둔기로 남편의 머리와 배, 가슴을 수차례 내리쳤다.

어머니는 아들의 죄를 뒤집어쓰는 진술을 했으나 집요한 수사관의 추궁에 마지막 6번째 조사에서야 아들이 먼저 남편을 때리고 둔기로 내려친 사실을 시인했다.

사실 이들 모자가 C씨를 잔인하게 살해한 배경에는 40년간 상습적으로 지속된 C씨의 폭력과 멸시가 크게 작용했다.

1975년 결혼한 이들 부부는 이후 남편 C씨의 지속된 가정폭력에 A씨를 비롯해 아들과 딸 등 전 가족이 고통속에서 살아왔다.

C씨는 평소에도 재떨이 등의 둔기로 A씨와 가족들의 머리와 팔 등을 마구 때려온 것으로 드러났으며, 거의 매일 욕설과 인격비하 발언을 퍼부었다.

C씨의 딸 역시 지속된 폭력으로 자살시도까지 했으며, 이후 서울로 거처를 옮겨 살고 있다.

C씨의 상습적인 폭력과 인격적인 멸시에도 A씨는 행여 자식에게 피해가 갈까 경찰에 신고할 생각조차 못하고 참고 살았다.

이들 부부의 이웃들도 "A씨는 이웃주민에 피해가 갈까 맞을때도 큰 소리 한번 안 냈다"며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냈다.

A씨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2019년 3월부터 별거를 시작했으나 아들이 별거 당시 마련해준 전세금 6000만원이 필요한 것을 눈치채고 원치 않는 남편과 재결합까지 했다.

가족 생계와 자식의 양육에 헌신한 A씨의 노력이 오히려 잔인한 결과로 이어지게 한 것처럼 느껴져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한 국민참여 재판의 현장이었다.

재판부는 "고령에 거동이 불편하고, 만취상태에서 저항조차 쉽지 않았을 피해자를 대상으로 잔혹한 수법으로 범행했다는 점에서 피고인들의 죄질이 대단히 좋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A피고인의 경우, 40여 년간 심각한 가정폭력으로 고통을 당해 오면서도 피해자에게 순종하고, 가족의 생계와 자식들, 손자의 양육에 헌신한 점, 피해자의 유족과 이웃들까지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재판과정 내내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참회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kky06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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