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너희 모두 죽여버리겠다."
20년 정도 어린 남동생에게 흉기를 휘두른 A씨(53)가 한 말이다. A씨는 "진짜로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1·2심 법원은 "살인 고의성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형사1부(부장 백강진)는 19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에서 피고인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6남매 중 장남인 A씨는 지난해 9월 13일 오전 8시40분쯤 전북 고창군 자신의 부친 묘소 앞에서 막냇동생 B씨(30대) 머리를 흉기로 내리쳐 살해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A씨는 만취 상태였다.
도대체 이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기에 피붙이끼리 칼부림까지 하게 됐을까. 1·2심 판결문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들 형제는 고창에 있는 토지 상속 문제로 크게 다퉜다. 동생들이 해당 토지를 아들인 A·B씨를 제외한 딸 4명 명의로 상속 등기를 하되 향후 이를 처분해 어머니 노후 자금과 병원비로 쓰기로 하자 A씨는 불만을 품게 됐다.
이후 A씨는 형제들과 왕래를 끊었다. 동생들에겐 가끔 '어머니 돌아가시면 죽여버리겠다'고 전화하거나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
실제 어머니가 숨지자 사달이 났다. A씨는 지난해 9월 12일 동생 B씨로부터 어머니 사망 소식을 듣고 이튿날 오전 8시30분쯤 독극물과 흉기를 들고 아버지 묘지로 향했다.
이를 본 A씨는 이성을 잃었다. 가뜩이나 상속 문제로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자신과 상의 없이 아버지 무덤을 개장했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A씨는 몸에 지닌 독극물을 땅에 던진 뒤 B씨에게 '너와 ○○이(여동생 이름)는 죽어야 한다'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흉기로 B씨를 치려 했다. B씨가 이를 왼손으로 막자 재차 다른 흉기로 머리를 내리쳤다. B씨는 다치긴 했지만, 황급히 몸을 피해 목숨을 건졌다.
이에 A씨는 "1심 판결이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했고, 형도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A씨 측 변호인은 "범행 도구를 가지고 간 목적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함이었다"며 "오히려 동생이 먼저 A씨를 주먹으로 때리려 했고, A씨가 이를 막으려다 동생 주먹이 A씨 오른팔에 걸리면서 오른손에 들려있던 흉기가 동생 머리에 맞아 상처를 입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 내용이 구체적이고 명확하다"며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B씨는 사건 당일 경찰 조사에서 "(A씨에게) '이러지 말고 같이 엄마 장례식장에 가자'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며 "형이 다시 흉기를 들어 내리칠 때는 처음에 휘두른 작은 흉기가 아닌 큰 흉기였는데 첫 번째는 진짜 칠 것처럼 위협만 했고, 두 번째는 직접 내 머리를 내리쳤다"고 말했다.
B씨는 당시 A씨를 피해 도망가면서 오전 8시55분쯤 경찰에 "형이 날 죽이려 한다"고 신고했다. 그러면서 "장례식장에 있는 누나들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A씨가 부친 묘소에 가기 전 흉기 단면을 그라인더(연삭기)로 갈아 날카롭게 만든 점도 유죄 근거로 봤다. 그러면서 "상처 부위와 정도 등에 비춰 피고인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흉기를 피해자 머리를 향해 대각선으로 내리쳐 베인 상처라고 보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아직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도 못했고, 피해자가 먼저 덤벼 생긴 상처라고 주장하는 등 범행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