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왜 내 몸을 지배하느냐"…망상이 빚은 시골마을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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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11. 오전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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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정신질환 앓다 '버럭'…둔기로 이장 살해한 60대
"삽으로 위협했다" 정당방위 주장…징역 13년·치료감호
© News1 DB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지난해 6월12일 오전 9시께 충남 논산시의 한 마을 인근 도로에서 A씨(65)는 논일을 나가던 마을 이장 B씨(68)를 붙잡고 대뜸 소리를 질렀다.

평소 B씨가 자신의 몸을 지배한다는 심각한 망상에 빠져 있던 A씨의 손에는 둔기가 들려 있었다.

A씨는 편집성 정신분열증 등 정신장애 2급을 앓고 있었지만, 별다른 치료를 받은 적이 없어 자신의 증상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A씨는 B씨가 오랜 시간 자신에게 ‘죽인다’는 말을 계속 건네 괴롭히거나, 자신을 성적으로 흥분시켜 동성애자로 만든 뒤, 성관계를 가지려 한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실제로 A씨는 같은 남성인 B씨를 상대로 성적 흥분을 느끼기도 했는데, B씨가 자신을 조종하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결국 A씨는 이날 길을 나선 B씨를 따라가 “왜 나를 지배하느냐”며 따졌다. B씨는 이런 A씨를 애써 외면했는데, A씨의 정신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화를 참지 못한 A씨는 곧장 B씨의 머리를 향해 둔기를 휘둘렀다. 저항할 새도 없이 바닥에 쓰러진 B씨를 A씨는 수차례 더 둔기로 내리쳤다.

숨진 B씨를 두고 자리를 벗어난 A씨는 주민의 신고로 곧바로 경찰에 붙잡혔다.

살인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A씨는 B씨를 둔기로 폭행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B씨가 먼저 삽을 들고 위협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따라서 살인의 고의도 없었다는 A씨에게 1심을 심리한 대전지법 논산지원 제1형사부는 “평소 적개심을 품고 있었고, 사망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다”며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다만 “평소 심각한 망상에 빠져 범행에 이르렀고, 정신감정 결과 정신병적 증상이 뚜렷하다”며 검찰 청구를 받아들여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검찰과 A씨는 각각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지만, 2심 결과는 1심과 다르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되풀이했던 A씨의 정당방위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심을 맡은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백승엽)는 지난달 23일 검찰과 A씨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심신미약 상태로 범행한 점은 인정되나, 심신상실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고, 참담한 결과에 합당한 형사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며 “다만 여러 사정을 종합해보면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거나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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