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는대로 200명은 죽이겠다” 처음 본 여성 살해한 그의 일기장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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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13. 오후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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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블랙박스] 일면식도 없던 50대 여성 무참히 살해
“사람 심판 권리있다. 200명은 죽여야한다” 범행 전 연쇄살인 계획
무기징역 형량 무겁다 항소, 다음달 10일 항소심 첫 공판

/조선DB

지난해 7월 11일 오후 1시,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 야산 공터. 20대 남성이 인적이 없는 공터에 주차한 차량으로 다가왔다. 차량 내부를 유심히 살펴보던 이 남성은 품 속에서 흉기를 꺼낸 뒤, 차 안에서 자고 있던 한모(여·56)씨에게 마구 휘둘렀다. 목 등 49곳을 찔린 한씨는 즉사했다.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은 사건 현장에서 4.7km 떨어진 마을에 사는 이모(23)씨였다.

이씨와 숨진 한씨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수도권에 사는 한씨는 이날 오전 8시쯤 일행 2명과 함께 버섯을 따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한씨는 “피곤하다”며 일행과 떨어져 차량에 홀로 남았고, 운전석에서 잠을 자던 중 변을 당했다. 이씨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 재판부는 “범행의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연쇄 살인을 준비하다

이씨는 범행 당일인 11일을 ‘연쇄 살인’ 시작일로 삼았다. 범행 10일 전에 인터넷으로 구입한 흉기가 바로 전날 배달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단기간에 여러 명을 살해해 경찰 수사에 혼선을 줘 추적을 피하겠다’는 생각으로 연쇄 살인 계획을 세웠다. 인제군 지도를 출력해 범행 후 도주 동선(動線)을 짜기도 했다.

이씨는 이날 아침 일찍 마을 야산 산책로를 돌아다니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그러던 중 야산 공터에 주차된 한씨 차량을 발견했다. 그는 집에서 이곳까지 걸어 다니며 주변에 CCTV가 설치됐는지 여부 등을 살폈다. 범행 직전엔 공터 인근에 있는 양봉 시설을 미리 찾아가 사람이 있는 지 확인했다.

이씨는 한씨의 목 부위를 집중적으로 찌르는 잔혹함을 보였다. 숨진 한씨가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에게 범행 현장이 발각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는 범행 후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에 “이미 시작한 거 끝을 봐야지”란 글을 남겼다. 재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검찰 조사 과정에선 “내가 믿는 내 능력은 죽이는 것이다.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 촉법소년(觸法少年)이라는 법의 구멍을 이용할 것”이라며 살인에 대한 후회나 죄책감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만 10세 이상~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은 형법상 책임을 지지 않는 ‘형사 미성년자’라서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체포할 수 없다.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한 인제군 등산로 입구 /연합뉴스

◇”200명은 죽여야” 초등학교 시절부터 싹튼 살해 욕망

“200명을 연쇄 살해하겠다”던 이씨의 ‘위험한 계획’은 11일 단 하루 만에 끝났다. 범행 발생 10시간여 만인 이날 오후 11시쯤 이씨가 경찰에 긴급 체포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숨진 한씨 차량 안에 설치된 블랙박스에서 차량 주변을 서성이던 이씨 모습을 포착했다. 차량 안에선 이씨의 지문이 다수 발견됐다. 경찰은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자신의 집에서 자고 있던 이씨를 붙잡았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장소 인근에 있는 양봉 시설에서 피 묻은 이씨 옷을 발견했다”며 “범행에 사용한 흉기도 이씨 집을 수색하던 중 찾았다”고 했다.

이씨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사람을 살해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고교 3학년과 대학교 1학년 때는 대검을 구입해 두 차례에 걸쳐 살해 대상을 물색하기도 했다. 입대 후에는 직접 개발한 살인 장치와 살인 계획, 살인 방법 등을 일기장에 글과 그림으로 상세히 기록하기도 했다. 살인 도구로 총기를 사용하기 위해 수렵 면허 공부도 했다. 군 전역 후엔 샌드백을 이용해 흉기로 급소를 찌르는 연습도 했다. 인터넷으로 실제 살인 사건 영상을 찾아보며 살인 욕구를 해소하기도 했다.

이씨 일기장엔 인명(人命)을 경시하는 글이 다수 적혀 있었다. “사람들이 무례하다” “인간은 절대 교화될 수 없다” 난 너희가 싫고, 언제나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고 다 죽여버릴 권리가 있다” “기본으로 100~200명은 죽여야 한다” 같은 내용이었다.

특히 그는 “한 번의 거만함, 무례함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켜야 한다”며 “장대호 사건이 위와 같은 현상을 잠재울 수 있는 획기적인 표본이다. 나는 깨끗한 백(白)이므로 사람들을 심판하고 죽여버릴 권리가 있다”고 살인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장대호 사건은 모텔 투숙객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이른바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이다. 장대호는 지난 2019년 8월 자신이 일하던 모텔에서 투숙객이 반말하고 숙박비 4만원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숙객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버렸다.

◇”형량 무겁다” 항소...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재판 과정에서 “할 말이 없다”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이씨는 1심 선고 5일 만인 지난해 11월 11일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춘천지법에 항소했다.

이씨 측 변호인은 본지와 통화에서 “이씨가 살인이라는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어린 시절 가정 불화가 심했고, 부모에 대한 적대감이 컸던 점 등에 비춰봤을 때 형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1심 재판 과정에서 어린 시절 가정환경이 불우했고, 앞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 새롭게 살고 싶다는 내용이 담긴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씨 항소에 맞춰 검찰이 “무기징역은 형이 가볍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첫 공판은 3월 10일 춘천지법에서 열린다.

[정성원 기자 jeongsw@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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