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성폭행, 오후 군입대…휴가 나와선 신혼 여성 성폭행, 남편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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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3.15. 오전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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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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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배만, 찾을 생각 안해…軍은 통보받고 휴가[사건속 오늘]
국가 책임 물어 살인·성폭행 피해자에게 위자료 3억원 지급 명령
ⓒ News1 DB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대 신혼부부 집에 흉기를 들고 들어가 부인을 성폭행하고 남편을 살해한 악마가 있다.

강력범의 입대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경찰의 무성의, 지명수배 사실을 통보받고도 즉각 조치는커녕 이를 강력범에 알리는 한편 위로 휴가까지 보내 살인의 장을 깔아준 군의 어이없는 태도로 인해 삶이 뿌리째 뽑힌 26살 부인은 "국가가 조금만 신경 썼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절규했다.

◇ 오전에 강도 강간, 오후에 군을 피신처 삼아 입대

2001년 3월 15일 부산 금정경찰서는 육군 모 사단 탈영병 천모 이병(21)에 대해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천 이병은 그해 1월 22일 입대 100일 위로 휴가(4박 5일)를 나온 뒤 귀대하지 않고 탈영, 전국을 돌려 9차례 걸쳐 살인, 성폭행, 강도 행위를 저지른 혐의를 받았다.

천 이병은 탈영 이전에 이미 경찰로부터 지명수배를 받은 강력범.

입대 날짜(2000년 9월 4일)를 받아 놓았던 천 이병은 그해 6월 동거녀로부터 강도 및 강간 혐의로 고소당했지만 경찰 소환이 없자 악마의 머리를 굴렸다.

입대 당일 새벽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에 들어가 성폭행하고 돈을 빼앗은 뒤 군을 피신처 삼아 그날 오후 인근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경찰은 입대 3일 뒤인 9월 7일 천 이병을 강도 강간혐의로 지명수배만 했을 뿐 찾을 생각하지 않았다.

ⓒ News1 DB


◇ 두 달 뒤에서야 군입대 사실 파악한 경찰, 해당 부대에 지명수배 사실 늦장 통보

동거녀 상대 강간성폭행 사건을 넘겨받은 인천 모 경찰서는 소재 파악을 시도, 천 이병이 육군 공병학교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경찰은 육군공병학교 측에 '지명수배' 사실을 통보했다.

육군 공병학교 중대장이 헌병대(군사경찰 전신)의 조언을 받은 결과 "경찰이 정식으로 사건을 이첩할 때까지 모른척하라"는 도움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 자대 배치 후 오히려 위로 휴가 받아…지명수배 사실 알고 탈영

공병학교가 모르쇠하는 바람에 천 이병은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2000년 12월 중순 육군 모 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됐다.

공병대대 중대장도 지명수배 사실을 통보받았지만 오히려 천 이병에게 "강도 혐의로 수배됐다. 피해자와 합의해 없던 일로 하라"며 헌병대에 넘기기는커녕 친절하게 조언까지 했다.

한술 더 떠 '입대 100일 휴가'를 가라며 이듬해 1월 22일 4박 5일간 위로 휴가까지 줬다.

지명수배된 사실을 알고 내심 불안해 하던 천 이병은 휴가를 나간 뒤 '복귀하면 헌병대 수사가 이뤄지고 그럼 교도소에 가야 한다'고 판단, 아예 탈영을 결심했다.

ⓒ News1 DB


◇ 신혼부부 집 들어가 강도강간, 살인 등 전국을 돌며 9차례 강력범죄

천 이병은 2001년 2월 6일 도피자금 마련을 위해 충남 아산시 모 아파트에 들어가 3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현금 3만 원과 농협 직불카드 1장을 강탈했다.

이후 2월 28일 인천 동구 한 아파트에 들어가 남편 A 씨(28)를 위협, 현금 등 50여만 원의 금품을 빼앗은 뒤 목 졸라 숨지게 하고 부인 B 씨(26)를 성폭행하는 등 전국을 돌며 아홉차례에 걸쳐 살인, 성폭행, 강도짓을 저질렀다.

◇ 부산에서 강도 미수 후 체포…1심 사형

수사 당국을 피해 3월 초 부산으로 내려간 천 이병은 3월 14일 오후 11시 30분쯤 부산시 금정구 부곡동 한 아파트에 침입하려다 집주인에게 들키자 도망쳤지만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천 이병은 "형이 무겁다"며 항소,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받은 뒤 지금 복역 중이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남편 살해당한 부인, 국가상대 소송에서 승소…우여곡절 끝에 3억 손배소 받아내

천 이병으로부터 남편을 잃고 자신도 성폭행 피해를 본 B 씨는 "강력범에 대한 국가 기관의 관리 허술로 후속 범죄로 이어져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이 "국가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패소로 판결하자 B 씨는 항소했다.

2006년 5월 23일 서울고법 민사14부(조관행 부장판사)는 "중범죄를 저지른 형사피의자의 소재를 파악하고도 방치한 경찰관들, 신병 처리와 관련해 군 수사기관에 문의하는 등의 조치 없이 휴가를 허가한 지휘관의 의무 위반과 범행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며 "국가는 B 씨에게 3억 7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07년 3월 8일 대법원도 2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며 B 씨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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