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차량에 9살 딸 잃었는데…前공무원이라 감형? 유족 두번 울렸다[뉴스속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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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8. 오전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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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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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대전 서구 둔산동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초등학생 4명을 차로 덮쳐 1명을 숨지게 한 60대 운전자 A씨가 지난해 4월10일 오후 대전 둔산경찰서에서 법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뉴스1

2023년 4월 8일. 만취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스쿨존 인도로 돌진해 9살 초등학생을 숨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2시21분쯤 배OO(당시 만 9세) 양은 친구 사이인 9~12세 어린이 3명과 함께 집 근처 생활용품점에 들렀다 오는 길이었다.

/사진=JTBC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 방송 화면

아이들이 대전시 서구 둔산동 인근을 걷고 있던 그때, 흰색 SM5 승용차 한 대가 갑자기 좌회전을 한 뒤 중앙선과 도로 경계석을 넘어 인도로 돌진했다. 승용차는 그대로 아이들을 덮쳤다.

사고가 난 골목은 문정초등학교, 탄방중학교, 충남고등학교 등 학교 세 곳이 서로 담장과 도로를 맞대고 있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었다. 이곳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좌회전 금지구역이었으나 운전자는 갑자기 좌회전한 뒤 인도를 덮쳐 사고를 냈다.

지난해 4월 11일 오전 대전 서구 을지대병원장례식장에서 대전 어린이보호구역 음주운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배OO양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사진=뉴스1

이 사고로 차에 치인 어린이 4명은 모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중 가장 심하게 다친 건 사고 당시 벽에 강하게 부딪힌 배양이었다. 배양은 이미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고, 인위적으로 성인 투여량 2배 정도에 해당하는 많은 약물을 투여해 심장을 다시 뛰게 했지만 사고 11시간만인 9일 오전 1시쯤 끝내 숨졌다.

부상을 입은 다른 어린이 3명 중 1명은 뇌수술을 받는 등 전치 약 2~12주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소주 반병 마셨다더니 '비틀비틀'…음주운전 상습범이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전 충남도청 공무원인 65세 남성 방모씨로, 사고 당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기준(0.08%)을 훌쩍 넘는 0.108%의 '만취' 상태였다. 또한 그는 어린이보호구역을 법정 제한 속도인 시속 30㎞를 넘어선 약 35㎞로 달려 사고를 내 현장에서 체포됐다.

당시 방씨는 한 시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에게 "지인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소주를 반 병 가량 마셨다"고 진술했으나 경찰 조사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후 12시30분쯤 대전 중구 태평동의 한 노인복지관 구내식당에서 방씨 등 9명이 소주와 맥주를 합쳐 13병가량을 나눠 마신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4월 8일 오후 2시21분쯤 대전 서구 둔산동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음주 사고를 낸 방씨가 사고 전 식당 앞에서 비틀거리다 만취상태로 차에 탑승하는 모습이 식당 앞 CC(폐쇄회로)TV에 포착됐다. /사진=JTBC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 방송 화면

방씨가 운전대를 잡기 전 술에 취한 채 비틀대는 모습도 포착됐다. 사고 전 촬영된 식당 CC(폐쇄회로)TV 영상에는 방씨가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이 담겼다. 비틀거리던 방씨는 차량 운전석에 올라탔고, 그의 차량은 운행 시작과 함께 한차례 급정차한 뒤 다시 출발했다.

방씨는 음주운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어린이들을 친 기억은 없다고 진술했으나 취재진이 "사고 당시 오히려 가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감속했던 것 맞냐"고 묻자 "(피해자들을) 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을 바꿨다.

방씨는 음주운전 상습범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방씨는 공무원 재직 시절인 1996년에 음주운전하다가 적발돼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고, 이후에도 상습적으로 음주운전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방씨는 "평소 술을 1~2잔 마시고 운전하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해 범행에 이르렀다"고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몸 못 가누는 만취 상태"…1심서 징역 12년 선고, 검찰 항고


방씨는 음주운전 사망 사고에 적용되는 위험운전치사상죄, '민식이법'으로도 불리는 어린이보호구역치사상죄, 일반 음주운전에 적용되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구속됐다.

지난해 9월 20일 진행된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창자가 끊어지거나 눈이 머는 것에 비유하지만 숨진 피해 아동의 유족은 더 깊은 고통이었을 것"이라며 방씨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이날 배양의 오빠(당시 25세)는 "방씨가 하는 반성은 감형받기 위한 악어의 눈물"이라며 "사고 직후 사과를 하지 않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자신의 살길을 찾았다는 것에 분노하며, 사죄 없는 반성문 제출은 유족을 향한 2차 가해"라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방씨에게 차량 몰수와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고 직후 시민들이 달려와 보호 조치를 하는 와중에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등 만취 상태였다"며 "피고인의 의지에 따라 회피할 수 있었던 사고인 만큼, 과실의 위법성이 크며 결과 또한 참혹하고 중하다"고 밝혔다.



유족 "공직 생활이 감형 사유?" 분통…오는 16일 2심 선고



/사진=JTBC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 방송 화면

그러나 배양의 오빠는 지난해 12월 방송된 JTBC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에 출연해 1심 판결에 대해 아쉬움을 털어놨다.

배양의 오빠는 "최후 변론에서 (방씨는)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데 판결문에는 (방씨가) '반성하고 있다', '피해 회복을 위해 주택을 처분했다', '공직 생활에 임했다'고 하는데 그게 왜 감형 사유인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이어 "상습 음주 운전자임에도 무기징역이 선고되지 않았는데 어떤 경우에 무기징역이 선고되는지 의문이다"라며 "검찰 측에 더 강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의견을 표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4월8일 오후 2시21분쯤 만취한 상태로 운전을 하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인도를 지나던 학생 4명을 덮쳐 9살 배승아 양을 숨지게 하고 3명이 중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같은 달 10일 대전 서구 탄방중 앞 사고 발생지역에서 시민들이 고(故) 배승아 양을 추모하기 위해 헌화 행렬을 이어갔다. /사진=뉴스1

이에 검찰은 "사망한 피해자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다른 피해자들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만큼 피해가 크다"면서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고, 방씨는 항소를 포기했다.

항소심은 지난달 12일 진행됐다. 이날 검찰은 "피고인의 범행으로 한 어린이는 생명을 잃었고 다른 어린이는 꿈을 잃었다"며 "현재까지 피해 회복도 이뤄지지 않고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어 엄벌함이 타당하다"며 방씨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방씨는 "항소하지 않은 것은 모든 죄를 인정하고 깊이 뉘우치며 반성한다는 의미"라며 "1심을 준엄하고 겸허히 받아들여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죗값을 달게 받는 길이라고 여기고 있고 잘못을 빌며 용서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방씨에 대한 2심 선고 공판은 오는 16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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