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 전력 음주운전자 무죄 선고 낸 판사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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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3.29. 오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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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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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선고 전 "개인의 양심과 법관의 양심 사이 고민했다"며 이례적 심경 토로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재판매 및 DB 금지


[남양주=뉴시스]이호진 기자 = 10년 전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고도 또다시 음주운전을 하다가 시민들에게 붙잡힌 50대 남성이 경찰의 실수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재판을 담당한 판사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야만의 시대가 아닌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피고인에게 그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선고에 앞서 개인적 양심과 법률적 양심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허탈함을 드러냈다.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형사1단독 최치봉 판사는 28일 도로교통법상 음주측정거부 혐의로 기소된 A(53)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2월 5일 오전 0시50분께 남양주시의 한 맥주집에서 소주 1병과 맥주 500㏄를 마신 뒤 자신의 차량을 끌고 자신의 집까지 운전한 하는 과정에서 목격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를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10여년 전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전력이 있는 인물로, 이날도 집까지 10㎞ 가량을 운전한 뒤 음주운전을 의심하고 따라온 목격자 일행이 붙잡자 계속 도주를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계속 도주를 시도하던 A씨는 같은 날 오전 1시 10분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대치중인 신고자 일행을 분리한 뒤 A씨의 신병을 인계받아 3차례에 걸쳐 음주측정을 요구했음에도 음주측정을 거부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문제는 당시 A씨를 체포한 경찰관들이 신고자 일행에게서 A씨의 신병을 인계받으면서 피고인에게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한다고 고지하거나 현행범 인수서 등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 확인한 A씨 측 변호인이 재판 과정에서 일반인인 A씨가 실질적으로 시민들에게 체포된 점과 이후 경찰이 신병을 인계 받는 과정에서 일부 절차가 누락된 점을 지적했고, 재판부도 위법한 체포가 인정되는 상황이라 음주측정거부 등 이후 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할 수 없게 됐다.

재판을 담당한 최치봉 판사는 선고에 앞서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고도 또다시 음주운전을 한 피고인이지만, 적법한 절차를 지키기 않은 체포 이후에 이뤄진 음주측정 요구였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개인적인 양심과 법관으로서의 양심 사이에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법관으로서 양심은 적법 절차 원칙을 따르는 것인데 적법 절차 원칙이라는 것은 문명의 시대에서 요구되는 것“이라며 ”피고인이 살고 있고 살려고 하는 야만의 시대에서 적법한 절차를 지키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회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최소 3년 이상의 형을 선고해야 하는 범행으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해서 피고인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음주운전으로 다시 이 법정에서 만난다면 그때는 단언컨대 법이 허용하는 최고의 형을 선고하겠다“고 말한 뒤 무죄를 선고하는 주문을 낭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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