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패스 열 달간 600차례 무단 사용…범인은? [취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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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2.21. 오후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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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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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하이패스 톨게이트.

내가 오래전에 쓰다 만 고속도로 하이패스 카드를 누군가 몰래 주워 써서 수백만 원이 후불 결제됐다면 어떨까요?

불과 열 달 새, 최소 수십 곳의 나들목을 600번 넘게 들락날락했다는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범죄 차량이 불과 신고 이틀 전까지 수십 곳의 나들목을 오갔지만, 차량을 특정할 CCTV 화면 등이 남아있지 않아 수사를 할 수 없다는데…. 정말 수사가 어려운 걸까요?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나도 모르게 결제된 통행료… 경찰은 "수사 불가"

60대 운전자 곽한겸씨는 2019년, 실수로 하이패스 카드를 꽂아둔 채 중고차를 판매했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쓰지 않았던 하이패스 카드비가, 갑자기 지난해 초부터 열 달 동안 468만 원이나 빠져나갔습니다.

곽 씨는 "매달 보험료가 빠져나가는 줄 알았지, 하이패스 요금이 빠져나가는 건 몰랐다"고 말합니다.

"5만원 씩 소액으로 돈이 결제되는 데다, 결제 내역이 영어로 찍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사건을 ‘관리 미제 사건’으로 등록한다는 경찰 통지서.

곽 씨는 곧장 하이패스 카드를 정지시킨 뒤 수사를 의뢰했지만, 경찰은 '관리 미제 사건'으로 처리했습니다.

범인이 고속도로 나들목 곳곳을 오간 CCTV 영상 등이 한국도로공사에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요금소를 오가는 차량이 찍히는 CCTV 영상 보관 기한이 영업소별로 다르다"고 밝혔습니다.

또 "'방범용'이 아닌 '요금 미납 식별용'으로 설치된 CCTV는 저장 용량이 적고, 용량이 차면 새 영상으로 덮어씌워져 이전 기록이 자동으로 사라진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누군가 고속도로를 수백 차례 드나들면서 곽 씨의 하이패스 카드를 수백만 원어치나 무단으로 사용했지만, 범행 차량을 식별할 CCTV 영상이 없어 경찰 수사로도 확인할 수 없었던 겁니다.

고속도로 하이패스 카드.

■ '하이패스 무단사용' 범인… 알고보니 '차량 운반 탁송기사'

경찰 수사가 어려워 미제 사건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KBS의 보도 이후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16일 충북 청주 흥덕경찰서에 인천에 사는 한 50대 남성이 찾아와 자수한 겁니다.

각종 차량을 고객이 원하는 곳으로 운반해주는 일을 하는 차량 탁송기사, 김 모 씨였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지난해 1월, 우연히 경기도 수원의 한 차고지에서 곽 씨의 하이패스 카드를 주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2월부터 11월까지 10개월간 무려 600여 차례에 걸쳐 468만 원을 사용했습니다.

경찰이 범행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차량만 400여 대에 달합니다.

차량을 수출하거나 말소시키는 등 탁송 업무를 할 때마다 곽 씨의 카드로 통행료를 결제한 겁니다.

경찰은 어제(20일), 김 씨를 컴퓨터 등 사용 사기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 겁이 났거나, 처벌을 덜 받기 위해 자수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KBS가 지난 7일 방송한 ‘나도 모르게 하이패스 470만 원 결제…“수사 불가”’ 뉴스 보도의 한 장면.

■ 범인, 자수한 뒤 사과… 피해자 "경찰 수사 아쉬워"

탁송기사 김 씨는 피해자 곽 씨에게도 전화해 사과했습니다.

곽 씨에게 "통행료로 쓴 500만 원을 입금해주겠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곽 씨는 "남이 쓰던 하이패스 카드를 한두 번이 아니라 수백 번을 사용한 건 계획적인 범죄라고 생각한다"면서 "정신적인 피해와 고통이 컸다"고 토로했습니다.

경찰 수사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습니다.

곽 씨는 "경찰에 고발만 하면 수사가 일사천리로 되는 줄 알았는데, 경찰서를 몇 번을 왔다 갔다 해도 '미결이다', '미정이다'라는 이야기만 들었다"면서 "관련 보도를 본 범인이 자수하지 않았으면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연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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