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강간 상황극? 알고보니 아래층 남자의 '치질 화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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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7.28. 오후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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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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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주거침입 20대 입건…부친과 자수
채팅앱서 여성 가장해 "놀러와" 꼬드겨
위층 주소 알려주고 남성들 방문 유도

피의자 "층간소음 문제로 다퉈 홧김에"
초기 "제2 강간상황극 아니냐" 우려도
경찰 "모르고 간 남성들 입건대상 아냐"
층간 소음 이미지. [중앙포토]
광주에서 "우리 집에 놀러오라"며 남성들을 한밤중 허위 주소지로 유인해 해당 주소지 거주민을 불안에 떨게 한 사건의 용의자는 범행 후 8일 만에 경찰에 자수하며 자신이 벌인 일을 뒤늦게 후회했다. "치질수술을 받고 집에서 혼자 쉬던 중 층간소음 문제로 위층 가족과 말다툼을 벌인 끝에 범행을 꾸몄다"면서다.

당초 피해자와 경찰은 "세종에서 벌어진 '강간 상황극' 모방 범죄가 아니냐"고 의심했는데, 용의자는 해당 집 아래층에 사는 부부의 20대 아들 A씨로 드러났다. A씨는 익명 채팅 앱에서 여자로 가장해 남성들을 위층집으로 유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28일 "랜덤 채팅 앱(불특정 인물과 무작위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에서 대화한 남성들에게 거짓 주소를 알려주고, 그 집에 허락 없이 들어가도록 유도한 혐의(주거침입 미수 간접정범)로 A씨(26)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19일 오전 1시부터 11시까지 남성 네다섯 명을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자신의 부모가 사는 아파트 위층 B씨 집을 방문하게 한 혐의다.

A씨는 본인이 개설한 익명 대화방에서 자신을 여자로 속이고 남성들에게 "집에 혼자 있으니 놀러오라"며 B씨 부부와 초등학생 자녀가 사는 윗집 주소와 아파트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해당 남성들과 "나 혼자 있는데 놀러와" "그럼 놀러갈게" "스킨십도 가능해?" "손으로 만지는 것쯤?" 등의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이 나눈 대화 내용에서 성매매를 목적으로 조건 만남을 시도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경찰은 전했다.

조사 결과 전남 나주에 사는 A씨는 지난 18일 광주에서 치질 수술을 받고 부모 집에서 혼자 쉬던 중 층간 소음 문제로 위층 집주인 B씨 아내와 두 차례 말다툼했다. A씨는 경찰에서 "치질 수술을 받고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낮에 윗집 애들이 뛰어다녀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그랬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 27일 오후 3~4시께 아버지와 함께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광주 북부경찰서를 찾아 자수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인터넷에서 나와 관련된 기사를 보고 불안해서 자수하러 왔다"며 "잘못했다. 반성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직업이 없고, A씨 부모는 다른 지역에서 식당을 운영해 광주 집은 자주 비어 있었다고 한다.

B씨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그간 용의자의 인적사항을 특정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해왔다. 지난 24일 A씨가 이용한 채팅 앱 회사 측에 "자료를 보관해 달라"고 요청한 후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주말이 끼는 바람에 영장 발부는 불발됐다. 용의자가 대화방을 나가면 자료가 사라지는데 주말 사이 이 사건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경찰은 수사가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초인종 이미지. [중앙포토]
당초 피해자 B씨는 "(용의자가) 얼마 전 세종에서 있었던 일(강간 상황극)을 모방해서 한 건지, 어떤 의도에서 한 건지 정말 답답하다"고 토로했었다. 경찰도 긴장했다. 앞서 대전지법 형사11부(부장 김용찬)는 지난달 4일 주거침입 강간 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C씨(29)에게 징역 13년, 주거침입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D씨(39)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거짓으로 상황극을 꾸며 애먼 여성을 성폭행하게 한 남성에게는 중형이, 실제 성폭행을 저지른 남성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C씨는 지난해 8월 랜덤 채팅 앱 프로필을 '35세 여성'으로 꾸민 뒤 '강간당하고 싶은데 만나서 상황극 할 남성을 찾는다'며 올린 글에 관심을 보인 D씨에게 집 주변 원룸 주소를 일러줘 D씨가 원룸에 사는 여성을 성폭행하게 만든 혐의로 기소됐다. 두 남성과 피해자까지 세 사람은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재판부는 "C씨가 피해자가 거주하는 빌라의 집 주소와 현관 비밀번호를 알아낸 다음 D씨에게 '강간 상황극'을 알려주고 엽기적인 범행을 하게 한 후 이를 지켜보는 대담성까지 보였다"며 "피해 여성은 그 충격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며 C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D씨에 대해서는 "자신의 행위가 강간이라고 알았다거나, 아니면 알고도 용인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C씨에게 속은 나머지 강간범 역할로 성관계한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여 유죄로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취지다.

광주 북부경찰서 관계자는 "A씨가 전과가 없는 데다 본인이 혐의를 인정하고 있고 도망 갈 염려도 없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피해자 집을 찾았던 남성들은 채팅 앱에서 여성을 가장한 A씨가 놀러 오라고 해서 간 것으로 고의성이 없기 때문에 입건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광주광역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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