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챗봇에 불법주차 민원 넣다
수십차례 음란메시지 입력 대학원생
성폭력특례법 위반 기소…1심 무죄에 검찰 항소
우리 법정에는 창이 없다. 환한 빛이 드는 법정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외부와 차단된 이 공간에서 매일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환호가 교차한다. 몇 줄 판결문에 평탄했던 삶이 크게 출렁이기도 하고, 스스로 어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은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재판은 우리 이웃을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는 가늠자다. 평범한 이들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작은 창을 내려는 이유다.
서울톡은 초기화면부터 자동화된 채팅 시스템으로 54종에 이르는 민원신고를 할 수 있게 구성돼 있다. 그러나 민원신고서가 접수된 뒤에는 내용을 상담사가 인지한 뒤, 이를 담당 부서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결국 챗봇 너머에 있는 사람이 민원 신고 내용을 인지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셈이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통신매체 이용 음란 등의 혐의로 기소된 ㄱ씨의 재판이 열렸다. 검은색 점퍼를 입고 안경을 쓴 ㄱ씨는 변호인과 함께 법정에 나와 미동도 없이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ㄱ씨를 기소한 검찰은 이러한 주장에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4월 열린 피고인 신문에서 검사는 “이상한 문자를 보내면 상담사·구청 직원 등 담당자가 볼 거란 생각을 안 했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ㄱ씨는 “몰랐다”는 취지의 답변을 거듭했다. 다산콜재단에 따르면 ‘상담사 민원 접수→담당자(공무원) 민원 확인 및 접수→처리결과 통보’ 3차례에 걸쳐 신고자에게 상담사와 공무원의 실명이 기재된 안내 메시지가 발송된다고 한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ㄱ씨가 280여회 챗봇 민원을 넣는 동안 여러 명의 상담사 이름이 명시된 문자가 왔을 텐데, 사람이 볼 거란 인식을 못 했냐고 재차 물었다. ㄱ씨는 이에 대해서도 “민원 처리·답변은 인공지능이 한다고 생각했다. (불법 주정차로 신고한) 차 번호 같은 정보를 전달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ㄱ씨는 2020년 7월 다산콜센터로부터 ‘음란 메시지를 자제해 달라’는 취지의 문자를 받고나서 민원제기 자체를 중단했다.
변호인 신문에서 ㄱ씨는 “문자를 확인한 후 상담사가 제가 챗봇에 쓴 글을 읽었다는 걸 알고 놀랐다. 수치스럽고, 제가 불쾌감을 줬겠다는 생각에 사과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보낸 욕설 등은 불법 주정차를 한 당사자를 향한 화풀이였다고도 덧붙였다. ㄱ씨의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담당 직원이 내용을 검토해 유관부서에 전달하니 성희롱은 자제하라’는 내용을 사전에 공지했어야 했다. 다산콜센터는 피고인이 민원을 중지한 지 3개월이 지난 뒤에 문제 된 글을 발췌해 고소했다”라며 서울시와 다산콜재단을 탓했다. 검찰은 ㄱ씨에게 징역 10월을 구형하고 ㄱ씨의 신상정보 고지 및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취업제한,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챗봇 채팅창 너머에 있는 사람을 인식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지난달 26일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민원 접수 뒤 오는 문자를) 피고인이 형식적 답변으로 이해했을 여지가 있다. 피고인은 2020년 7월 ‘서울톡으로 민원을 접수해도 직원이 보고 이관한다’는 메시지를 받고 인간이 확인한다는 점을 알게 되고 중단했다”며 “챗봇에 전송한단 인식을 넘어 사람에게 도달한다는 고의가 있다는 게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