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동영상 유출의 피해 여성 A씨는 이 단어를 꼬리표처럼 여겨졌다. 그가 20대 초반에 찍힌 동영상은 OO녀, △△△녀 등 여러 제목으로 바뀌며 인터넷을 떠돌았다. 옛 남자 친구가 분명히 지우기로 약속했던 그 영상이 흉기처럼 A씨의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좌절한 그에게 한 줄기 빛이 찾아 왔다. 법원이 유포 경위와는 무관하게 촬영물을 지우지 않은 전 남자 친구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동영상 유포와 별개로 영상 촬영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북부지법 민사6단독 박형순 판사는 지난 14일 영상 촬영자인 이모씨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 직후 A씨는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영상을 삭제하며 살아가야겠지만, 조금이나마 힘 내보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손발이 떨렸다. 몇 년이든 견뎌서 이씨에게 꼭 벌을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이씨가 휴대전화에서 영상을 삭제하는 것을 확인했고, 몇 달 후 헤어지면서 삭제한 것이 맞는지 다시 물었다. 이씨는 “삭제했으니 걱정 말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씨의 유포 혐의에 무혐의 결정을 내리는 대신 A씨 외에 3명의 여성을 몰래 촬영한 것에 대해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씨가 2015년 9월부터 2018년 5월까지 각각 3명의 여성이 자고 있을 때 동의를 받지 않고 촬영한 사진과 영상 66개가 발견돼서다. 이씨는 불법촬영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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