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상태서 성폭행 당한 미성년…“‘괜찮다’ 말, 성관계 동의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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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2.07. 오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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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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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상태로 성폭행을 당한 미성년 피해자가 “괜찮다”고 말했다고 해서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준강간)으로 재판에 넘겨진 군인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판결하며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냈다.

2014년 A 씨는 피해자 B 씨를 포함한 지인들과 술을 마시던 중 화장실에서 지인에게 성폭행을 당한 B 씨를 발견했다. A 씨는 B 씨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B 씨가 “괜찮다”고 답하자 B 씨를 성폭행했다.

A 씨는 “B 씨에게 괜찮은지 물어 보고 동의를 얻어 성관계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B 씨가 이미 성폭행 당한 상태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B 씨는 검찰 조사에서 “강간 피해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 그냥 무슨 대답이든 ‘괜찮다’고 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1,2심을 맡은 군사법원은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A 씨는 B 씨를 집에 데려다줬고 B 씨는 성폭행 직전과 도중의 상황은 기억하면서 성폭행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기억하지 못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B 씨는 다른 사람에게 성폭행 당하는 것을 말리지 않은 A 씨를 원망한 것일 뿐 A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원심 판단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A 씨가 B 씨의 동의를 얻어 성관계를 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2심은 합리적인 근거 없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A 씨는 B 씨가 술에 취한 상태로 성폭행을 당해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걸 알면서도 B 씨를 성폭행했다”며 “B 씨도 A 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상준 기자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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