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성범죄 저질렀다” 유서 남겼지만···대법 ‘증거 불인정’,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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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5.07. 오후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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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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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박민규 선임기자


‘중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유서를 유죄의 증거로 볼 수 있을까. 형사소송법상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려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한 것이 엄격히 입증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A·B·C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이 사건 쟁점은 앞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D씨가 범죄사실을 폭로하며 남긴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였다. D씨는 2006년 같은 중학교 친구들이었던 A·B·C씨와 함께 피해자를 불러내 술을 먹인 뒤 피해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유사성행위를 하고 간음했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2021년 3월 D씨는 “도대체 왜 그런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이해를 할 수도 없고 제 자신이 용서되지도 않는다. 이 사건이 꼭 해결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D씨의 유서를 계기로 수사가 시작됐고 검찰은 피해자와 피해자 어머니의 진술 등을 토대로 피고인들을 특수준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2심 판단은 엇갈렸다. 형사소송법상 ‘공판기일에 진술을 요하는 자가 사망·질병 등을 이유로 진술할 수 없는 경우엔 진술한 내용이 포함된 조서나 서류를 증거로 삼을 수 있다’고 돼 있다. 다만 그 진술이나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해졌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 1심은 D씨가 유서를 작성할 당시 심리상태가 불안정했다는 점, 피해자의 신체에 이상 징후가 발생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D씨의 유서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1심을 뒤집고 A·B·C씨에게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2심은 “이 사건 유서는 D씨가 A·B·C씨와 함께 술에 만취한 피해자를 강간했다는 것으로서 중대한 범행을 고백하는 내용”이라며 “피고인들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이 아니라 유서 내용의 진정성이 뒷받침된다”고 봤다. 또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 등이 유서 내용과 상당 부분 부합한다면서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상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해졌음에 대한 증명’은 단지 그러한 개연성이 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유서는 그 작성 동기가 명확하지 않고, 수사기관에서 작성 경위나 구체적인 의미가 상세하게 밝혀진 바 없다”며 “사건 발생일로부터 무려 14년 이상 경과된 후 작성됐고 주요 내용이 구체적이거나 세부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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