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섭 변호사/법무법인 일신
하재섭 변호사/법무법인 일신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아파트 공화국이다. 집값이 치솟든 하락하든 아파트에 대한 국민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국토교통부가 연말 발표한 2022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아파트 거주 비율은 51.9%로 전년 대비 0.4%포인트 높아졌다. 심지어 청년, 신혼부부, 고령 가구를 가리지 않고 아파트 거주를 최우선으로 희망한다. 

사람이 모여드는 곳은 어김없이 사건도 몰린다. 필자가 가장 많이 마주하는 것도 아파트 내에서 벌어지는 민형사 사건이다.

아파트의 장기수선충당금은 차후 아파트 외벽도 칠하고 승강기 등도 고치기 위해 아파트 소유자들로부터 미리미리 징수해 적립하는 금원이다. 공금인 만큼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며 그 사용처 역시 법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공동주택관리법 제30조 같은 법 시행령 제31조).

관리주체는 장충금 사용계획서를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작성하고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을 거쳐 장충금을 사용하게 돼 있다. 장기수선계획에 의하지 않거나 수선계획 조정 없이 장충금을 지출했다간 용도 외 사용으로 여겨져 공동주택관리법 위반 및 횡령죄로 처벌될 수 있다.

아파트 전체를 위해 사용했어도 사용 목적이 엄격히 정해진 금원을 용도 외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공동주택관리법 제102조 규정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받게 되고 이는 결국 입주민들의 손해로 여겨져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까지 부담하는 이중고를 마주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사건이 빈번히 발생한다. 

부산의 A아파트 사례를 보자. 피고는 2012년 9월부터 2013년 4월까지 A아파트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당시 아파트 승강기 로프 교체, 각 동 옥상 및 2층 발코니 우레탄 공사, CCTV 공사를 진행했다. 관할 구청은 장기수선계획을 조정하지 않고 보수공사를 시행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자 A아파트 입대의 측에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했다. 

아파트 측은 과태료를 납부했다. 동시에 당시 위 보수공사를 추진한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피고의 대응은 △절차를 갖췄다 △긴급한 공사였다는 두 가지였다. 하지만 법원은 이 둘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판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고는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한 다음 회장과 총무, 관리사무소장, 동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개최하고 그에 따라 보수공사를 시행했다. CCTV 공사의 경우 장기수선계획에는 없었으나 긴급하게 필요해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 아파트 장기수선계획은 2006년 수립한 뒤 2013년 6월경에야 처음으로 조정됐을 뿐이다. 당시 피고가 추진한 보수공사는 장기수선계획의 조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계획서, 회의록에 의존한 것이다.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보수공사를 시행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 따라서 피고의 이 주장 부분은 이유 없다. 아울러 피고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안전과 일상적 편의와 직결되는 하자 보수를 위해 긴급하게 보수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해당 보수공사의 긴급성을 인정하기 부족하다. 설령 보수공사의 긴급성이 인정되더라도 장기수선계획의 조정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쳤어야 하므로 피고의 이 부분 주장 역시 이유 없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500만 원 상당의 손해를 배상하라” (부산지법 2016나13120 판결 중 일부)

오늘날 많은 단지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장충금을 운영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일부 아파트 운영 주체는 법률 지식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관리비를 집행해 미숙한 경우도 있다. 물론 아파트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다. 

어쨌든 그때그때 땜질식 운영은 금물이다. 관련법은 장충금 용도외 사용 문제를 부정행위로 간주하고 과태료 부과와 관리회사 영업정지라는 행정처분까지 내리고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공동주택관리법 제90조 제3항, 제53조 참조).

 

법무법인 일신 ☎ 02-517-8300

 


하 재 섭  l  법무법인 일신 변호사, 국토교통부 행정처분 심의위원, 직방 부동산팀 자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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