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설왕설래] 보복성 층간소음은 스토킹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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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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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핸드백에 사탕 하나쯤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제 밤 퇴근 길이었다. “혹시 사탕 있으세요?” 서울 강남과 수원 광교를 순환하는 1570번 광역버스다. 앞좌석 중년 남성이 다짜고짜 앞쪽 여성한테 물었다. 뒤돌아보는 여성은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다.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핸드백을 뒤졌다. “여기요!” 다른 여성이 빨랐다. 아까 그 여성도 바로 사탕을 찾았다. 사탕은 중년의 옆좌석 청년한테 건네졌다. 보일락말락하던 앞자리 청년 뒷머리가 뚜렷해졌다. 저혈당증을 앓는 청년이 약을 챙지지 못해 빚어진 상황이다. “괜찮으세요?” 중년 남성은 먼저 내리면서도 걱정까지 챙겨가지는 못했다.

지난해부터 출근길 신분당선 한 역 3-1 승강장에서 늘 만나는 가족이 있다. 30대 부부와 유모차에 탄 서너살짜리 아이다. 강남역 직장 근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맞벌이 부부인 듯하다. 30분간 지켜보는 아이는 늘 태블릿PC로 영어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아이가 유모차를 버리고 부모 손을 잡고 걸어다녔다. 아이가 전동차에서 부모 손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어르신들이 손주 같은 아이를 어떻게든지 노약자석에 앉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 우물에 빠질 것 같은 아이를 구하려고 뛰어드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남에게 양보할 줄 아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과 더불어 인간의 본성이다.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다. 어질고 의롭고 예의바르면서 현명하게 살려는 자세가 전통적인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었다.

요즘 서로 나 몰라라 하는 세상인데 너무 가까워져서 문제가 된다. 층간소음이다. 이웃끼리도 잘잘못만 따지려는 이기심이 넘쳐난다. 말싸움을 넘어 칼부림까지 하고 스피커를 천장에 가져다 대거나 벽을 쿵쿵 치는 보복을 가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웃에 공포심을 줄 정도의 반복적인 보복성 층간소음을 스토킹 범죄로 처벌한 대법원 판결이 그제 처음으로 나왔다. 공동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소양조차 없다면 아예 이웃한테서 멀찌감치 떨어져 사는 게 현명하다는 경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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