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키워준 90대 유모, 내쫓지 말라” 부친, 아들 상대 소송 승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8일 19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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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어릴 적 유모였던 90대 노인을 내쫓으려던 아들의 시도가 법원 판결에 의해 무산됐다. 전문직인 아들은 유모가 살던 오피스텔이 자신의 명의로 된 점을 이용해 소송을 냈지만, 유모의 편에 선 아버지에 의해 오피스텔마저 잃게 됐다.

8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은 40대 아들 A 씨가 90대 유모를 상대로 제기한 건물인도 소송 항소심에서 아들의 청구를 기각하고 유모의 손을 들어줬다.

유모는 과거 A 씨의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투병 중인 모친을 대신해 아버지를 포함한 5남매를 친자식처럼 키우고 집안일을 해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집을 나와 기초생활수급자로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이어나갔고 치매 증세마저 오게 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는 형제자매들과 상의해 2014년 10월경 서울 성동구에 7평(23.1m²) 크기의 오피스텔을 매입해 유모가 머물게 했다. 다만 유모가 사망하면 자연스럽게 아들 A 씨에게 넘겨주기 위해 오피스텔의 명의를 아들로 해뒀다.

하지만 2021년 아들 A 씨는 유모에게 오피스텔을 비워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밀린 임차료 약 1300만 원을 한꺼번에 지급하라는 요구도 했다. A 씨는 “전문직으로 일하면서 모은 돈과 대출금으로 오피스텔을 구입했다”며 자신이 진짜 소유자라고 주장했다. 아버지의 선택은 아들이 아닌 유모였다. 아버지는 유모의 성년후견인을 자처하며 아들의 소송에 맞섰다.

결국 1심 재판부는 “오피스텔의 실질적인 소유주는 아버지”라며 아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아들은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 역시 아버지의 손을 들어줬다. 아버지는 이 사건과 별개로 아들 명의로 오피스텔이 등기된 것이 무효라며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 소송도 진행해 올 10월 승소했다. 법원은 “아들이 이 사건 건물과 관련해 관리비, 재산세 등 어떠한 자금도 부담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결국 아들은 유모를 내쫓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피스텔 소유권마저 아버지에게 뺏기게 됐다.

유모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김기환 변호사는 “처음에는 명의신탁 법리에 따라 승소가 쉽지 않은 사건으로 봤다”며 “길러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 아버지의 의지가 승소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이 사건을 ‘2023년도 법률구조 우수 사례’로 선정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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