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땐 2억 배상” 중개사 믿었는데…1인당 아니라 총액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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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1건당 2억원 보증 아닌
1년간 해당 중개사 보증총액

전세보증금 반환소송 북새통에
법원 수개월째 조정기일 못잡아
경매해도 90%는 보증금 일부만

보증보험 없인 계약 않는게 최선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상해줄 목적으로 만든 공인중개사 공제보험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인중개사들이 ‘2억원짜리 공제보험’에 가입했다고 전세계약자들을 안심시키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인중개업소가 1년간 보상해줄수 있는 손해보상금 총액이기 때문이다. 여러건이 발생할 때엔 몇푼 받지도 못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인천 미추홀구에 거주하는 A씨의 경우 빌라 전세보증금 1억원을 사기당했다. A씨는 “빌라에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지만 공인중개사가 ‘2억원짜리 공제보험에 가입하면 사고가 터져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며 “하지만 이 중개업소를 통해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수십명에 달해 단 100원도 보전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국내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계속 늘면서 이들이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요청한 보증 지급액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로 받는 보증액은 전세 보증금에 크게 못 미치거나 아예 못 받는 경우도 있어 실효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12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세사기와 관련한 공제청구액은 9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전세사기와 관련한 청구액만 그 정도 금액 수준”이라며 “상황에 따라 청구액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협회가 보유한 공제기금은 총 550억원가량이다.

공인중개사들이 가입하는 보증보험은 기본적으로 공인중개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집값 상승 등의 이유로 사고 건별 손해배상액이 늘면서 올해부터는 그나마 기존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늘었다.

문제는 전세 계약자들이 ‘보증보험 2억원’을 사고때 온전히 보전받을 수 있을 금액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공인중개사 보증보험은 계약 1건당 보증금액이 아니다. 공인중개업소 한곳에서 1년간 보상해 줄 수 있는 손해배상금 총액이다. 따라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많은 공인중개사는 1인당 보상액이 줄어들거나 아예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개업소의 2억원 보증 한도 말만 믿고 전세계약을 했다가 보증금 1억원을 사기 당한 A씨는 매일 속이 타들어 간다. 그는 “중개업소 보증보험이 2억원까지 보장한다고 해서 그대로 믿었는데 그게 전혀 쓸모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허탈해 했다.

법적으로 해결하려 해도 보장받는 금액은 작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전세사기와 관련한 재판에서 공인중개사의 책임 범위가 결정되면 그 금액만큼 보증보험이 지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세보증금을 못 받는 세입자가 늘면서 집주인을 대상으로 정식 전세금 반환소송을 제기해도 제때 돈을 받기 힘든 상황마저 벌어지고 있다. 전세사기와 역전세 여파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늘자 법원이 관련 소송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과 원만한 합의를 보기 어렵게 된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소송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30대 직장인 B씨는 올해 5월 전세 만기가 도래했지만 아직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주택에 보증금 13억원을 내고 전세로 거주했다. 만기 6개월 전부터 집주인에게 집을 비울 의사를 표시하며 전세보증금 반환을 요구했지만 집주인은 “전세 시세가 하락해 만기까지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다”고 통보했다.

이에 B씨는 서울중앙지법에 전세금 반환 소송을 냈다. 하지만 소를 제기한 지 5개월이 지난 현재 사건은 조정에 부쳐졌지만 조정 기일이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전세대출 만기가 도래하자 그는 그간 모아둔 목돈과 신용대출을 합쳐 대출금을 갚을 수밖에 없었다.

B씨는 “조정에 넘겨진 뒤에도 기일이 잡히지 않고 있어 보증금을 언제 돌려받을 수 있을지 막막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법원이 최근 발간한 ‘202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임대차보증금 반환소송 접수 건은 총 3720건으로 지난 2021년 3418건보다 302건(약 9%) 증가했다. 올해는 전세사기 여파로 소송 접수 건이 더욱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막상 세입자 입장에서 소송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하세월이고 변호사 수임료 등 지급 비용도 만만찮게 크다. 그런데도 B씨의 경우처럼 소를 제기하는 이유는 주택을 경매에 넘겨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법원 판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세라 법률사무소 예감 변호사는 “주택을 경매로 넘기려면 권한이 필요한데 공증을 미리 받았거나 전세권 등기를 한 경우가 아니라면 승소 판결문이 있어야만 강제 경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주택이 경매를 통해 낙찰되더라도 보증금을 전부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경매에서 유찰이 거듭돼 낙찰가율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강진한 법무법인 제이앤에프 파트너 변호사는 “경매를 진행하더라도 보증금을 전부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전체의 90%가량”이라며 “대항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경우 다른 채무자와 낙찰금액을 나눠야 해 챙길 수 있는 금액 규모는 더욱 줄어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전세보증금반환보증(전세 보증보험) 가입이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강 변호사는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주택은 아예 전세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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