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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수십억 사기 공인중개사 계속 영업해도 속수무책

연규욱 기자
입력 : 
2023-11-01 17:45:10
수정 : 
2023-11-01 19: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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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확정전까지 영업 가능해
장소만 옮겨 불법행위 지속
자격증 대여·무등록자 판쳐
"10건중 3건 불법중개 추정"
중개사協 단속권한 사라져
관리감독 지자체에만 의존
자정기능 회복 대책 필요
◆ 전세사기 사태 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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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밀집 지역 일대에 위치한 공인중개사무소 앞에 한 행인이 서 있다. 약 1년 전 불법 중개업자들이 벌인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이 지역의 전월세 문의가 급감했다. 김호영 기자
2019년 하반기 6개월간 단 한 곳의 중개사무소에서만 34건의 임대차계약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경기도 부천시의 한 신축 빌라. 이곳의 공인중개사는 임대차계약을 작성해주는 조건으로 보증금액의 0.2%를 일명 '리베이트'로 받은 혐의로 올해 5월 적발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2019년부터 약 2년간 총 17건의 보증 사고(보증금 35억원)가 집중 발생한 경기도 고양시의 한 중개사무소 공인중개사 역시 전세사기 가담이 의심돼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꽤 오랜 기간 전세사기 가담이 의심되는 이들이 여전히 버젓이 중개행위를 이어나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제재가 취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형이 확정되기 전이어도 업무정지가 이뤄지는 다른 일부 자격자 단체와는 대비된다. 변호사의 경우 피해자의 진정이 있으면 대한변호사협회 직권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법체계상 형이 확정되기 전 조치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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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발발한 전세사기 사태를 계기로 도마에 오른 공인중개사들의 위법행위는 올해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자체적으로 적발한 중개사무소 위법행위만 452건이다. 대다수는 중개보조원 또는 무자격자의 위법한 영업행위 등으로, 국토부가 전세사기 사태를 계기로 올해 두 차례 시행한 공인중개사 특별점검 결과와 유사한 유형이다.

업계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보유하지 않은 무등록자의 불법중개가 전체 부동산 거래의 30%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동업을 가장한 공인중개사의 자격증 대여가 판치고 있다"며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는 사후 조치에만 관여하는 경향이 커 단속 활동 강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협회는 업계 생리를 가장 잘 아는 협회가 단속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변협 등 일부 전문자격사 단체가 자체적으로 지도·단속 및 징계 권한을 가진 데 반해 공인중개사협회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협회가 지도·단속 권한을 지녔던 시기(행정안전부가 권한 위탁)와 그렇지 못했을 시기(자율 점검)에 불법행위를 적발한 건수는 크게 차이가 난다. 협회가 행안부(당시 내무부)로부터 지도단속권을 위임받았던 1991~1998년 사이 협회가 적발한 공인중개사무소 불법행위는 4만9398건에 달했다. 연평균 6000건 이상 위법행위를 적발한 셈이다. 그러나 정부가 IMF 외환위기 이후로 일자리 창출, 산업 육성 등을 이유로 협회의 지도·단속 권한을 대폭 축소한 이후 협회가 자율 점검을 통해 적발해낸 불법행위는 최근 8년간 1443건에 그쳤다. 연간 적발 건수로 치면 약 180건으로, 이전 대비 2.9% 수준으로 급감했다.

협회가 회원 단속 권한을 갖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은 지난해 10월 발의됐으나 1년째 국회에 계류돼 있다. 권대중 서강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민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인 만큼 협회에 단속 권한을 부여해 자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불법 중개행위에 대한 단속·처분을 지자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여의찮다. 한 공인중개사는 "관리·감독기관인 등록관청 주무관들이 1~2년 단위로 로테이션되기 때문에 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일이 커지는 것이 불편해서인지 분명히 수사 의뢰를 해야 할 중대한 위법행위임에도 행정처분만 하는 지자체들을 많이 봐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개사무소 소재지는 수년째 그대로인데, 대표(공인중개사)만 계속 바뀌는 곳이 더러 있다"며 "이런 곳은 자격증이 없는 중개보조원이 실질적인 주인이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 소지자를 바지사장으로 앉히는 곳일 수 있다. 이런 곳을 조심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이런 경우는 구청이 충분히 단속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데,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 중개보조원은 "중개사무소 간판을 자세히 보면 대표자 성명을 스티커로 뗐다 붙인 흔적이 있는 곳이 더러 있다"며 "이런 곳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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