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표절, 더 이상 안돼’…법원, 짝퉁 랜드마크 카페 철거 명령

입력 2023.09.19 (17:28) 수정 2023.09.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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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웨이브온’(왼쪽)과 울산 북구 동해안로의 한 카페. 두 덩이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디자인 뿐 아니라 외관까지 쌍둥이처럼 닮았다. 사진=이뎀건축사사무소 제공부산 기장군 ‘웨이브온’(왼쪽)과 울산 북구 동해안로의 한 카페. 두 덩이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디자인 뿐 아니라 외관까지 쌍둥이처럼 닮았다. 사진=이뎀건축사사무소 제공

"건축물 표절은 경찰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표절, 저작권 문제가 걸림돌이 되면 잘못된 관습이 미래 젊은 건축가들에게도 전가되는 만큼, 제 대에서 끊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 콘크리트 마술사의 마술을 그대로 배낀 '짝퉁 마술'

노출 콘크리트를 능숙하게 활용해 건축계에서 '콘크리트 마술사'라고 불리는 곽희수 건축가(이뎀건축사사무소). 곽 씨는 2016년 12월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웨이브온>이라는 건축물을 완공합니다. 해당 건물은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진 건축물”이란 높은 평가를 받으며 2017년 세계건축상(WA), 201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받는 등 지역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 뒤, 울산광역시 북구에도 <웨이브온>과 거의 비슷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생겼습니다. 원조 <웨이브온> 건축믈과 불과 차로 1시간 거리입니다. 바닷가에 바로 접하고 있다는 입지 뿐만 아니라 규모, 외관, 내부 구성까지 데칼코마니 마냥 복제품 수준이었습니다.

이에 곽 건축가와 ‘웨이브온’은 결국 2019년 12월 울산 카페와 이를 설계한 건축사사무소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합니다. 당시 손배소송 뿐 아니라 건축물 철거 소송도 동시에 제기했습니다.

부산 기장의 ‘웨이브온’(왼쪽)과 울산 북구의 한 카페. 내부 구조도 비슷하다. 이뎀건축사사무소 제공부산 기장의 ‘웨이브온’(왼쪽)과 울산 북구의 한 카페. 내부 구조도 비슷하다. 이뎀건축사사무소 제공

■법원, '짝퉁 건물' 철거 명령...표절 건축물 논란의 이정표 남겨

4년 가까이 끌어온 지난한 소송에서 법원은 마침내 곽 건축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1부(박태일 부장판사)는 어제(18일) “피고인 A카페의 건축사사무소가 원고인 이뎀건축사사무소에게 5000만원을 배상하고, 건물을 철거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국내 건축 저작권 관련 소송에서 ‘건축물 철거 명령’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의 건물을 무단으로 복제한 '웨이브온' 건물을 공중에 전시함으로써 원고의 전시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피고 건물을 공중에 전시하지 않아야 하고, 해당 건물을 철거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곽 건축가를 대리한 정경석 변호사는 “일반인들이 건물 외관을 보더라도 표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이라며 "재판부가 저작권 침해에 대한 구제책으로 손해배상 외에 건물 철거까지 명령했다는 게 앞으로 건축물 표절 논란과 관련해 새로운 이정표를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부산 기장의 ‘웨이브온’(왼쪽)과 울산 북구의 한 카페를 위에서 내려본 전경도 유사하다. 이뎀건축사사무소 제공부산 기장의 ‘웨이브온’(왼쪽)과 울산 북구의 한 카페를 위에서 내려본 전경도 유사하다. 이뎀건축사사무소 제공

■ 반복돼 온 '건축물 표절' 시비, 근절될 수 있을까

그간 건축계에서 '건축물 표절 논란'은 암묵적으로 용인되어 왔습니다. 문학, 미술, 영화 등 다른 장르에선 표절 문제가 논의됐지만, 건축물에 관해선 저작권 기준이 모호하고 건물을 철거 명령까지 이뤄진 사례 또한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5년 서울 강남의 복합문화공간 ‘크링’이 외관이 비슷한 제주의 한 면세점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과와 보상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강원도 강릉의 유명 커피숍인 테라로사의 건물 디자인을 모방한 경남 사천시의 표절 건축물에 대해서도 2020년 대법원이 '건축주에게 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했을 뿐 별도의 철거 명령 등은 없었습니다.

곽 건축가는 KBS와의 통화에서 " 건축계에서 건축 저자에 대한 문제는 무용한 권리처럼 여겨졌고, 건축의 특성이 명확한 창작의 영역이 아니라고 봤다"며 "이번 법원의 철거 명령을 통해 건축계에서는 거의 기어다니는 수준도 안 됐던 권리들이 이제는 뛰는 수준의 결론이 나온 것 같다"며 그간의 소회를 밝혔습니다.

곽 건축가는 또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피고 측이 창작의 진정성이라는 논리를 피력해서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이번 판결문을 보니 저작권 문제를 심도있게 다룬 것 같다"며 "건축계가 한 발 더 나간 계기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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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물 표절, 더 이상 안돼’…법원, 짝퉁 랜드마크 카페 철거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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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웨이브온’(왼쪽)과 울산 북구 동해안로의 한 카페. 두 덩이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디자인 뿐 아니라 외관까지 쌍둥이처럼 닮았다. 사진=이뎀건축사사무소 제공
"건축물 표절은 경찰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표절, 저작권 문제가 걸림돌이 되면 잘못된 관습이 미래 젊은 건축가들에게도 전가되는 만큼, 제 대에서 끊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 콘크리트 마술사의 마술을 그대로 배낀 '짝퉁 마술'

노출 콘크리트를 능숙하게 활용해 건축계에서 '콘크리트 마술사'라고 불리는 곽희수 건축가(이뎀건축사사무소). 곽 씨는 2016년 12월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웨이브온>이라는 건축물을 완공합니다. 해당 건물은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진 건축물”이란 높은 평가를 받으며 2017년 세계건축상(WA), 201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받는 등 지역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 뒤, 울산광역시 북구에도 <웨이브온>과 거의 비슷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생겼습니다. 원조 <웨이브온> 건축믈과 불과 차로 1시간 거리입니다. 바닷가에 바로 접하고 있다는 입지 뿐만 아니라 규모, 외관, 내부 구성까지 데칼코마니 마냥 복제품 수준이었습니다.

이에 곽 건축가와 ‘웨이브온’은 결국 2019년 12월 울산 카페와 이를 설계한 건축사사무소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합니다. 당시 손배소송 뿐 아니라 건축물 철거 소송도 동시에 제기했습니다.

부산 기장의 ‘웨이브온’(왼쪽)과 울산 북구의 한 카페. 내부 구조도 비슷하다. 이뎀건축사사무소 제공
■법원, '짝퉁 건물' 철거 명령...표절 건축물 논란의 이정표 남겨

4년 가까이 끌어온 지난한 소송에서 법원은 마침내 곽 건축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1부(박태일 부장판사)는 어제(18일) “피고인 A카페의 건축사사무소가 원고인 이뎀건축사사무소에게 5000만원을 배상하고, 건물을 철거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국내 건축 저작권 관련 소송에서 ‘건축물 철거 명령’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의 건물을 무단으로 복제한 '웨이브온' 건물을 공중에 전시함으로써 원고의 전시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피고 건물을 공중에 전시하지 않아야 하고, 해당 건물을 철거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곽 건축가를 대리한 정경석 변호사는 “일반인들이 건물 외관을 보더라도 표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이라며 "재판부가 저작권 침해에 대한 구제책으로 손해배상 외에 건물 철거까지 명령했다는 게 앞으로 건축물 표절 논란과 관련해 새로운 이정표를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부산 기장의 ‘웨이브온’(왼쪽)과 울산 북구의 한 카페를 위에서 내려본 전경도 유사하다. 이뎀건축사사무소 제공
■ 반복돼 온 '건축물 표절' 시비, 근절될 수 있을까

그간 건축계에서 '건축물 표절 논란'은 암묵적으로 용인되어 왔습니다. 문학, 미술, 영화 등 다른 장르에선 표절 문제가 논의됐지만, 건축물에 관해선 저작권 기준이 모호하고 건물을 철거 명령까지 이뤄진 사례 또한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5년 서울 강남의 복합문화공간 ‘크링’이 외관이 비슷한 제주의 한 면세점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과와 보상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강원도 강릉의 유명 커피숍인 테라로사의 건물 디자인을 모방한 경남 사천시의 표절 건축물에 대해서도 2020년 대법원이 '건축주에게 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했을 뿐 별도의 철거 명령 등은 없었습니다.

곽 건축가는 KBS와의 통화에서 " 건축계에서 건축 저자에 대한 문제는 무용한 권리처럼 여겨졌고, 건축의 특성이 명확한 창작의 영역이 아니라고 봤다"며 "이번 법원의 철거 명령을 통해 건축계에서는 거의 기어다니는 수준도 안 됐던 권리들이 이제는 뛰는 수준의 결론이 나온 것 같다"며 그간의 소회를 밝혔습니다.

곽 건축가는 또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피고 측이 창작의 진정성이라는 논리를 피력해서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이번 판결문을 보니 저작권 문제를 심도있게 다룬 것 같다"며 "건축계가 한 발 더 나간 계기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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