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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집 주인도 빌라왕?”...한푼도 없이 수천채 가진 이들의 정체 [뉴스 쉽게보기]

임형준 기자
박재영 기자
입력 : 
2023-05-19 06:01:00
수정 : 
2023-08-05 14: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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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촌
서울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요즘 대규모 전세 사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 한 번쯤은 들어보셨죠?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분이나, 앞으로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불안한 마음이 크실 거예요. 당장은 나와 상관없더라도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던 분들도 많으실 거고요.

오늘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전세 사기 사태를 정리해 봤어요. 어떤 사기 사건들이 있었는지, 사기 수법은 어땠는지,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부 대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한 번에 정리했어요.

전세 사기, 어떤 일들이 있었지?

대규모 전세 사기 소식은 부동산 경기가 둔화했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주 전해지기 시작했어요. 그중에서도 ‘빌라왕’이나 ‘건축왕’으로 불리는 몇몇 사기꾼들은 한 사람당 무려 1000채가 넘는 집들을 보유하며 전세 사기를 벌여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죠. 이런 주요 사건마다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에 달하는 사기 피해가 발생했어요.

수많은 전세 사기 사건들 중에 최근까지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건은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발생한 ‘건축왕 사기’였어요. 안타깝게도 피해자 중 일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사람들이 더 많이 우려하는 사건이 됐어요.

건축왕? 범죄자 이름이 뭐 그래

언론 매체들은 다른 전세 사기 용의자들을 보통 ‘빌라왕’이라고 불렀어요. 빌라를 수백 채씩 가지고 사기를 쳤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유독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용의자는 ‘건축왕’으로 불려요. 이들 사이에는 뭔가 다른 점이 있어요. 그래서 뉴스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거예요.

전세 사기

건축왕과 빌라왕은 가장 대표적인 전세 사기 수법을 사용하는 두 사기꾼 유형이에요. 수백 수천 채씩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세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같지만, 사기 수법은 조금 달라요.

‘건축왕’은 이름에 건축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만큼, 집을 직접 지었어요. 주로 인천 미추홀구에서 빌라를 지은 뒤에, 이 집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았죠. 여기까지는 보통의 건축업자들과 다르지 않아요.

문제는 담보 대출을 많이 받은 집에 전세 세입자를 받고, 대출금과 전세 보증금으로 또 다른 건물을 지었다는 점이에요. 다른 건물이 지어지면 같은 방식으로 대출과 세입자 보증금을 받아 건물 숫자를 계속 늘려갔고요.

전세 사기
인천 지역에서 전세 사기를 벌인 ‘건축왕’은 담보 대출을 많이 받은 집에 전세 세입자를 받고, 대출금과 전세 보증금으로 또 다른 건물을 지어 건물 숫자를 계속 늘렸어요.

나중에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 보증금을 남겨두지 않고, 수천 채까지 마구 늘린 거예요. 건물마다 금융회사에 갚을 대출도 많아서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지면 세입자가 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전세 계약을 할 때 이런 위험성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끊임없이 등장하는 ‘빌라왕’들

반면 ‘빌라왕’으로 불리는 전세 사기범들은 직접 집을 짓거나 대출을 받지는 않았어요. 이미 지어진 빌라를 사들이면서, 집값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금액에 전세 계약을 하는 방식을 썼죠. 예를 들어 1억 원짜리 집을 사들일 때, 동시에 보증금 1억 1천만 원의 전세 계약을 맺어서 자기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주택을 취득한 거예요. 이 경우라면 집을 한 채 늘리고도 오히려 1천만 원이 남았겠죠.

물론 나중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세입자들에게 제대로 안내해 주지 않았어요. 이런 수법은 ‘무자본 갭투자’라고 불러요. 갭투자는 주택을 구매하면서 직접 들어가 살지 않고 전세 세입자를 받는 방식의 투자를 뜻해요.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집을 사두고는 싶은데, 집값 전체를 모두 지불하기는 부담스러우니까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gap)만 가지고 일단 집을 사두는 거죠. 2억 원짜리 집을 사면서 1억 5천만 원에 전세 세입자를 받는다면, 5천만 원으로 집을 사둘 수 있어요.

그런데 빌라왕들은 아예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집을 사들였잖아요. 그래서 이 수법에 ‘무자본’ 갭투자라는 이름이 붙게 됐어요.

무자본 갭투기

이렇게 집을 수천 채까지 늘릴 동안 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까요? 집값이 대체로 오르는 중이었기 때문이에요. 아주 위험한 방식으로 집을 늘려도, 결국은 집값이 오르거나 그대로라서 새로운 세입자를 받아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지난해부터 부동산 경기가 둔화하고, 집값이 빠르게 하락하자 바로 문제가 생겼어요. 전세 보증금 시세가 급락했고, 새로운 세입자도 잘 구해지지 않아서 보증금을 못 돌려주기 시작한 거예요.

그동안 완전히 ‘돌려막기’ 식으로 세입자 돈을 돌려줬던 ‘빌라왕’과 ‘건축왕’들은 집을 팔아 치우지 않는 한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수가 없겠죠. 이미 가격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버렸으니, 집을 팔아도 돈을 갚을 수가 없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였어요. 잘 팔리지도 않았고요.

대규모 사기 피해, 구제 방법은?

앞서 언급했듯 건축왕과 빌라왕의 사기 수법에는 차이가 있어서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방식도 조금 달라요. 건축왕은 피해 주택을 담보로 금융회사에 대출을 많이 받아놓은 탓에, 주택에 법적 담보 설정을 위한 근저당이 걸려 있어요. 전세 세입자보다 금융회사들의 근저당이 먼저 설정됐기 때문에,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 팔리더라도 이 돈을 금융회사가 먼저 가져가게 되죠. 사실상 경매로 집을 팔아도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인천 건축왕 사기의 피해자들은 우선적으로 ‘경매 중단’을 요구해요. 경매로 집이 넘어가고, 금융회사가 돈도 가져가 버리면 피해 구제를 받을 방법이 아예 사라져 버리니까요. 법적으로 경매를 중단할 근거는 아직 없어요. 정부는 일단 금융회사들에게 협조를 구해서 경매 기일을 연기하고 있어요. 지난 12일 기준으로 경매 날짜가 도래한 ‘건축왕’ 주택의 경매 61건은 모두 일정이 연기됐다고 해요.

경매 절차를 멈춰달라는 건축왕 사기 피해자들과 달리, 빌라왕들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은 ‘경매를 진행하되 우선 낙찰권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어요. 집에 대출이 끼어있지 않으니까 오히려 경매로 처분해 보증금 일부라도 돌려받는 것이 낫고, 직접 경매에 참여할 여력이 있는 경우라면 적정 가격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낙찰받는 것이 괜찮은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살던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계속 살 수도 있고요.

건축왕 빌라왕
아직 정해지지 않은 ‘전세 사기 특별법’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정부와 국회는 대책 마련에 착수했어요. 전세 사기를 예방할 방법들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미 발생한 피해자들을 구제할 방법도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국회는 이번 달 25일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키기로 했어요.

피해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취지에는 다들 공감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여전히 이 특별법을 두고 국회와 정부에서는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어요. 구체적인 피해자 지원 방식을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정부와 여당(국민의힘)은 피해자들 중 해당 주택을 경매로 낙찰받기를 원하는 피해자에겐 우선 매수권을 주고, 낙찰받은 주택을 살 때 각종 세금 감면과 낮은 금리의 장기 대출 등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어요.

경매로 집을 낙찰받고 싶지 않은 피해자가 있다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같은 공공기관이 우선 매수권을 대신 행사해서 해당 주택을 매입하는 방안도 내놨어요. 공공기관이 대신 집을 낙찰받고, 피해자가 시세의 30~50% 임대료만 내고 최장 20년 동안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예요.

전세 사기
전세 사기 피해가 발생한 인천의 한 아파트 공동현관에 전세 사기 피해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박형기 기자>

반면 야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은 더욱 적극적인 구체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에요. 정부가 우선 피해자들에게 보증금 전액이나 일부를 돌려주고, 여기에 들어간 돈은 전세 사기범들에게 법적 대응을 해서 회수하는 방식을 주장하고 있죠.

양쪽의 주장에는 모두 일리가 있어요. 좀처럼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이유예요.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일부라도 빠르게 반환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야당의 주장도 맞는 말이고, ‘사실상 자금 회수가 어려운데도 혈세를 투입하는 방식을 쓰면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는 정부의 근거 또한 맞는 말이니까요.

이외에 전세 사기의 피해자로 인정하는 범위를 두고도 여전히 양측의 주장이 맞서고 있어요. ‘무자본 갭투자’ 같은 방식이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세입자를 속이거나 사기를 치려는 의도 없이 무자본 갭투자를 했다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집주인도 있을 수 있잖아요. 이런 경우는 피해자가 있어도 전세 사기로 단정 짓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고요. 그래서 다양한 유형의 피해자를 얼마나 폭넓게 지원할지를 두고 의견 충돌이 계속되고 있어요.

이번 대규모 전세 사기 사태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과연 정부와 국회는 피해자들을 도울 적절한 방안에 합의하고, 넘쳐나는 전세 사기범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예방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 전세 계약, 이건 꼭 확인하세요!

전세 사기는 빌라왕이나 건축왕 같은 사례 외에도 다양한 수법이 존재해요. 그만큼 조심해야 할 것도 사실 정말 많죠. 그래도 이번에 수많은 피해자들을 한꺼번에 만들어 낸 수법들은 대체로 몇 가지만 잘 확인하면 예방할 수 있어요.

① 시세를 먼저 확인하자

위에서 설명한 ‘무자본 갭투자’ 같은 사기 수법을 피하려면, 전세 보증금보다 매매 가격이 확실히 비싼 집을 선택해야 해요. 그래서 해당 주택의 시세를 알아보는 과정이 꼭 필요해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안심 전세 앱, 시세를 집계하는 KB국민은행의 ‘KB부동산’ 앱 등 시세 조회 서비스를 활용하면 돼요. 전세 보증금이 시세의 70%를 넘지 않는 게 가장 좋고, 이런 매물을 구하기 쉽지 않다면 70~80%대에서 구한 뒤 전세 보증금 반환 보험을 활용할 수 있어요. 신축 빌라는 시세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전세 사기에 많이 활용됐는데, 시세 가늠에 자신이 없다면 피하는 게 좋아요.

② 전세 보증보험을 활용하자

계약 전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가입이 되는 집인지 알아보면 좋아요. 이 보증보험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을 때, 일단 보증 기관이 임차인에게 돈을 대신 돌려주는 제도예요. 전세 보증금이 시세와 비슷해서 위험한 집은 애초에 가입이 안 되고, 임대인이 상습적으로 보증금을 안 돌려줬거나 건물이 불법 건축물이라면 가입이 거절되기 때문에 가입 가능 여부만 확인해 봐도 도움이 돼요.

③ 등기부 등본을 꼭 확인하자

부동산 등기부 등본은 꼭 확인해야 해요. 해당 주택의 주인이 누구인지, 담보 대출을 받고 설정된 근저당은 없는지, 가압류되지는 않았는지 등 다양한 권리관계를 보여주거든요. 또한 등기부 등본은 계약 직전은 물론 계약 후에도 한 번쯤 확인해 보는 것이 좋아요. 계약과 거의 동시에 몰래 담보 대출을 받거나 명의를 바꾸는 등의 새로운 사기 수법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④ 몰래 대출받지 못하게 특약을 넣자

전세 계약 시 ‘계약 후 잔금을 지급한 뒤 다음 날까지 근저당을 설정하지 않는다’ ‘임대인은 계약 후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지 않는다’ 같은 특약 사항을 넣으면 조금 더 안전해요. 집주인이 전세 사기꾼이 아니라면 특약에 쉽게 동의해 줄 만한 내용이어서 큰 부담 없이 요청하셔도 돼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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