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세입자 울리는 신종 ‘전세사기’···집주인 모두 20대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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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3.12. 오후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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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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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화곡동 다가구주택 밀집지역. 기사와 관련없음. 심윤지 기자


집주인이 세입자 몰래 세입자를 다른 지역으로 전입신고한 뒤 서류상 빈 집이 된 세입자 거주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는 신종 ‘전세사기’ 피해가 서울 뿐만 아니라 경기지역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12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확인됐다.

정부가 전세사기와 관련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기존 제도의 헛점을 이용해 새로운 수법의 범죄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이런 형태의 전세사기는 세입자가 할 수 있는 각종 법정 보호장치를 마련해도 피해를 입을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경향신문은 취재과정에서 전세사기에 가담한 집주인이 주로 95~96년생의 20대 청년인 사실도 확인했다. 피해 자치구와 경찰은 이들 집주인이 명의를 빌려주고 서류처리를 대행하는 ‘바지사장’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전입신고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제보도 들어오고 있어 관련 내용을 파악 중”이라며 “급한 돈이 필요한 청년들이 범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범행에 가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피해자 A씨는 “집주인의 마지막 주소지가 우리집이어서 집주인 우편물이 우리 쪽으로 오고 있다”며 “집주인 명의로 계속 고소장이 오고 있는데 피해자가 여러 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12일 하나은행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세대출요건을 어겨서 대출이 중도해지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세입자 몰래 ‘전입신고’ 후 대출


A씨는 전셋집을 구하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안심전세대출을 받았는데 대출조건 중 하나가 ‘가구주’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은행은 최근 A씨가 ‘가구원’으로 변경됐기 때문에 대출연장 불가 등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주민등록등본을 떼본 A씨는 자신이 다른 지역으로 전입신고된 사실을 확인했다. A씨 가족은 지난해 3월 15일부터 평택시 합정동의 다가구 주택에 거주 중이었다. 하지만 등본상 A씨와 배우자는 지난해 11월 28일부터 김포시 구래동의 한 빌라로 전입신고 해 살고 있는 것으로 돼 있었다.

집주인 조모씨(27)가 지난해 11월 28일 김포 구래행정복지센터에 제출한 전입신고 신청서. 빨간 네모칸 안에는 조씨가 임의로 판 세입자 A씨의 목도장이 찍혀 있다. 제보자 제공


전입신고 된 구래동 빌라의 가구주는 집 주인 조모씨(27)였다. 그는 자신의 집에 A씨와 배우자를 ‘동거인’으로 전입신고 한 뒤 서류상 더이상 세입자가 살지 않는 합정동 집을 담보로 6000만원을 대출받았다. A씨의 전세보증금은 1억7500만원으로, 당시 집값과 전세가가 거의 같았다. 사실상 ‘깡통전세’로, 대출자체가 불가능한 집인데도 대출승인이 난 것이다.

조씨는 A씨 이름으로 목도장을 파서 전입신고서에 날인하는 대담함도 보였다. A씨는 조씨를 경찰에 신고하고 주민등록주소 원복신청을 했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류상 김포구래 주민이다. 김포 구래행정복지센터가 원복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A씨는 “주민복지센터 담당자가 ‘서류를 위조한 사람이 잘못이지 우리는 절차상 잘못이 없다’면서 행정심판을 받아오면 원복해준다고 했다. 현재 행정심판을 제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A씨는 변호사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추가로 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한 동주민센터 직원 B씨는 지난달 전입신고자를 대상으로 ‘전입 사후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성북구로 전입신고를 한 C씨의 주소지에 C씨가 살지 않았던 것이다. 확인결과 C씨는 현재 구로구에 거주하고 있고, 그가 전입신고를 한 적은 없었다. C씨 역시 전세사기 피해자였다. C씨의 집주인 강모씨(26)는 성북구의 한 빈 집에 C씨를 전입신고 했다. 강씨는 전입신고를 한 다음날 서류상 빈 집인 C씨가 거주하는 집을 담보로 대부업체에 1억6000여 만원을 빌렸다.

가구주가 아닌 동거인으로 전입신고할 경우 전입대상자의 주민등록증 사본과 주소, 도장만 있으면 전입신고가 되는 점을 노린 것이다. 성북구 관계자는 “빈 집이 많은 지역을 의도적으로 찾아 전입신고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임대인들은 임대차계약 과정에서 임차인의 주민등록증사본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열려있다. 현행 주민등록법 시행령에는 전입신고시 별도의 신분확인 절차가 규정돼 있지 않다. 성북구 담당자는 당시 서류상 전입대상자에 전화를 걸어 신분확인을 했지만 이 역시 C씨가 아닌 다른 공범이 대신 받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성북구는 성북경찰서에 허위전입신고(주민등록법 위반 및 사문서위조)로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성북구 관계자는 “C씨가 금전적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소를 구로구로 원복했고, 변호사로부터 ‘대항력 유지가 가능하다’는 법률해석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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