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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보증보험 가입했는데...돈 못받아 길거리 나앉게 생겼습니다"

유준호 기자
입력 : 
2021-08-10 17:35:11
수정 : 
2021-08-10 21: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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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내고 가입 마쳤는데
지급시기 되자 돌연 "못준다"

소유권 이전·전입신고 같으면
임차인 불리한 상황되는 등
18일 전세보증 의무화 앞두고
HUG 업무개선 필요성 부각
사진설명
보증보험에 가입했지만 전세금을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은 전셋값이 치솟고 있는 서울 아파트 전경. [매경DB]
"새 전셋집 이사 날짜까지 따로 물어 확인했으면서 보증금 반환은 안 된다네요. 꼼짝없이 배액배상하고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오는 18일 임대사업자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의무화를 앞둔 가운데 정작 세입자들은 요청한 보험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전세금 반환심사에서 날벼락을 맞은 무주택자들은 제멋대로인 전세보증보험 시스템에 분통을 터뜨리는 상황이다. 정부는 전세금 미반환 사고를 막기 위해 반환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있는 제도마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30대 A씨는 최근 전세보증금을 두고 속을 태우고 있다. 보증금 반환 이행 예고 공문까지 보냈던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돌연 보증금 지급을 보류했기 때문이다. A씨는 2019년 5월 임대인 B씨와 전세계약서를 작성했다. 같은 달 30일 입주했는데, 그사이 임대인이 바뀌어 같은 날 임대사업자 C씨와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작성했다. 한 달 뒤 HUG 전세반환보증보험에 가입까지 마쳤다. A씨에게 위기가 불어닥친 것은 2020년 1월. 새로운 임대인이 세금을 체납해 전셋집이 압류 상태에 놓인 것이다.

A씨는 지난달 초 HUG에서 요청하는 서류를 준비해 보증보험 이행 청구를 했다. 하지만 지급일을 맞추기 위해 이사 날짜까지 물어보던 HUG 측에서는 지난달 말 돌연 대항력에 문제가 있어 보험금 지급이 보류됐다고 통보해왔다. 임차인은 전입신고 다음날 대항력이 발생하지만 질권과 근저당권 등 새 임대인의 권리는 당일 효력이 발생하다 보니 향후 HUG가 세입자를 대신해 임대인에게 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HUG는 최근 대항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임대보증금 반환 이행 청구에 대해 무더기로 심사 보류 판정을 내렸고, A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세입자만 30여 명에 달한다.

18일 임대보증보험 가입 의무화 전면 시행을 앞두고 HUG가 보증사고에 부쩍 고삐를 죄는 것으로 해석된다. 임대사업자의 가입이 의무화하면 가입자가 늘어 보증사고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 여기에 최근의 전세난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올해 들어서만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평균 6000만원가량 뛰었고, 아파트 전세 물량이 줄자 빌라·오피스텔로 수요가 몰리면서 '깡통전세 주의보'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올해 6월 전국 오피스텔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84.63%까지 치솟으며 201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진설명
실제 HUG가 집주인을 대신해 갚아준 전세보증금은 2018년 583억원에서 지난해 4415억원으로 7.6배 증가했다.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셋값)이 올라가고, 자금력이 충분하지 못한 이들도 갭투자에 뛰어들면서 보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평가다. 문제는 정작 기존에 보증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조차 HUG의 내부 심사 기준에 따라 제때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A씨 등 세입자들도 앞서 보증보험에 가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정부가 가입만 의무화한다고는 하지만 보험금 지급을 하는 기관에서 입맛대로 규정을 바꿔버리면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 쩔쩔매는 상황에 놓인다.

실제 HUG 측은 A씨에게 임대보증금 반환 이행 예고 공문까지 보냈다. A씨는 "보험 가입 시에도 동일한 서류를 검토해 가입을 받고 보증서를 내주었으면서 막상 이행할 때가 되니 내부 규정과 내부 법률 자문을 운운하면서 꼬투리를 잡고 이행을 해주지 않고 있다"며 "HUG가 일방적으로 말을 바꿔버리면서 이사갈 집을 계약해두고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같은 처지에 놓인 가입 세입자들의 민원이 쏟자지자 HUG 측도 뒤늦게 대응 방안을 내놨다. 대항력 유무에 시비가 있는 기존 가입자들에게 보증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이다. HUG 관계자는 "세입자의 대항력이 생기기 전에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경우 매수인에게 세입자가 대항력을 주장할 수 있는가를 두고 내부적으로 검토했다"며 "결론적으로는 이행을 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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