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억 횡령하고 사라진 남편…몰랐다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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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02. 오후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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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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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theL] 행방불명된 남편, 홍콩 도피 직전 아내에게 8만7000달러 송금…단순 유학비? 재산 은닉? ]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1300억을 횡령하고 행방불명된 남편으로부터 거액의 외화를 넘겨받은 아내가 외화를 모두 토해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아내는 "받아선 안 될 돈인지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다국적기업 ABB그룹 한국법인이 A씨를 상대로 "사해행위를 취소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일 밝혔다. 사해행위란 채권자에게 돌려줘야 할 재산을 감추거나 빼돌리는 것을 말한다.

A씨 남편은 이 회사에서 재무 담당 상무로 근무하면서 2005년부터 12년 동안 1318억원을 횡령했다. 남편은 2017년 2월 홍콩으로 도피한 이후 행방불명됐다.

남편은 해외 도피하기 직전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 유학 중이던 A씨에게 8만7000달러를 송금했다. ABB그룹은 사설탐정을 고용해 8만7000달러 송금 사실을 알아낸 뒤 A씨 계좌를 동결시켰다.

A씨는 남편의 소재를 알게 되면 알려주는 조건으로 계좌 동결을 풀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한국에서 남편의 측근을 만난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은 것이다. 이에 ABB그룹은 8만7000달러를 돌려받겠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서 A씨는 받아선 안 될 돈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평소처럼 자녀들 학비, 생활비를 입금한 줄 알고 받았을 뿐 사해행위가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1심은 A씨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보고 8만7000달러에 이자 5%까지 쳐서 갚으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2심에서 뒤집어졌다. 2심은 남편의 횡령 사실을 모르고 받은 돈이므로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A씨의 시누이가 남편의 측근과 나눈 통화 내용이 근거가 됐다. 남편의 범죄사실을 A씨에게 알려야 할지를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또 2심은 A씨가 유학 기간 동안 많게는 10만달러까지 입금받았던 것으로 볼 때, 평소처럼 학비, 생활비를 보낸 줄 알았다는 A씨 주장도 부자연스럽지는 않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가 8만7000달러를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A씨가 남편의 횡령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재산 은닉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은 △남편이 홍콩으로 도피하기 직전 처가 친인척들 명의로 재산을 빼돌리고 있었던 점 △8만7000달러가 A씨에게 송금된 것도 이때쯤인 점 △A씨가 남편의 소재 정보를 사실대로 제공하겠다고 회사와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A씨 남편이 재산을 빼돌리는 데 A씨 오빠도 협조했다"며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자신에게 8만7000달러를 송금했다는 사실을 A씨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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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사회부에서 종로, 동대문, 성북, 노원, 강북, 도봉, 중랑구 경찰서와 북부지방검찰청, 북부지방법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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