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버린 패륜아·자녀 버린 나쁜 부모, 유류분 청구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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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25. 오후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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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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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47년만에 유류분 손질
제도 정당성은 인정하지만
패륜 가족까진 보장 안돼
2025년까지 제한 사유 입법
법조계는 헌재 결정에 환영
"가족형태 변화 고려한 판결
입법으로 확실히 이뤄져야"


◆ 유류분 일부 위헌 ◆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 선고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고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보장하는 법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았다. 김호영 기자


헌법재판소가 25일 다룬 유류분 사건의 핵심 쟁점은 '유류분 권리자의 범위' '유류분 비율 규정'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 등이었다. 유류분 대상에 형제자매까지 포함되는 것이 타당한지,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 등으로 아내와 자식에게 유류분 비율을 일률적으로 규정한 것이 합당한지, 공익기부 목적으로 증여한 재산도 예외 없이 유류분에 포함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헌재는 유류분 제도 자체는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피상속인의 형제자매에게 법정 상속분의 3분의 1을 보장하는 민법 제1112조 제4호는 합당하지 않다고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형제자매에게까지 유류권을 보장하는 것은 피상속인과 유류분 반환 청구의 상대방인 수증자·수유자의 재산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배우자나 자식이 부모 등에게 유기·학대 같은 패륜 행위를 해도 유류분 상실 사유를 따로 규정하지 않은 민법 제1112조 1~3호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현재 유류분 제도에 따르면 피상속인의 재산 증식이나 부양에 기여하지 않았어도 배우자나 자식을 비롯한 직계비속은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을 보장받는다. 동시에 헌재는 피상속인을 부양했거나 재산 형성에 기여한 점을 인정하지 않은 민법 제1118조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는 "지금까지는 자식 등에 대한 유류분이 일률적으로 인정됐는데, 고인 재산 증식에 특별한 기여가 없거나 굉장히 큰 불효를 행한 경우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아 정의에 반하는 결과가 나오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앞으로 학대를 비롯한 패륜 행위가 발견되면 배우자 또는 자식의 유류분 요구권을 제한하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해당 법 조항에 대한 시한은 내년 12월 31일로 정했다. 헌재는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당분간 기존 법 조항은 그대로 시행하되 추가적인 입법 절차를 통해 적절한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들에 바로 위헌 결정을 선고해 효력을 상실시키면 법적 혼란이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헌재는 2020년 이후 지금까지 축적된 사건 47건을 종합해 심리·판단했다. 앞서 헌재는 2010~2013년 두 차례에 걸쳐 "유류분 제도는 합헌"이라고 판단했지만 이후에도 상속 문제를 둘러싼 위헌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날 헌재의 결정을 두고 '완전한 도시화가 진행된 현대사회 분위기와 변화된 가족관계를 반영했다'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배현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피상속인을 유기·학대한 자의 유류분 권리를 제한하고 유류분에서도 상속인의 기여를 인정하고자 하는 헌재 결정은 고인의 재산 처분에 대한 자유와 유류분 권리자 보호 양 측면을 균형 있게 고려한 판단으로 환영할 만하다"며 "다만 유류분 제도에서 상속인의 기여를 어떻게 고려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패륜 행위를 유류분 상실 사유로 인정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입법 과정에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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