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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9억 체납해서 '감치 명령'…도주하면 끝?

29억 체납 한의사, '감치 명령' 후 4개월째 도주

체납자 집문 앞

수십억 원대 세금을 고의로 체납한 한의사 A 씨가 법원에서 감치 명령을 받은 지 넉 달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국세청이 감치 집행을 하기 위해 A 씨가 있을 만한 곳을 급습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도피 행각 중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은 29억여 원의 세금을 체납한 A 씨에 대해 감치 결정을 내렸다. 다만 당시 A 씨가 <즉시 항고> 의사를 밝혀 법정 감치가 이뤄지진 않았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항고하지 않아 그 효력이 상실됐고, A 씨는 언제라도 구치소에 <최장 30일> 동안 갇힐 일만 남았다.

하지만 A 씨는 자취를 감췄다. 국세청이 이곳저곳을 수소문 중이지만, 마치 증발된 것처럼 사라졌다. 얼마 전 A 씨가 모처에 숨어 있다는 첩보를 받고 찾아갔지만, 몇 시간 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아> 집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A 씨는 2012년부터 6년 동안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연구회를 운영하면서 자문료 등의 명목으로 받은 53억 원 정도 수입에 대해 세금 신고를 하지 않은 혐의가 있다. 그가 내야 할 세금은 29억 4천만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수십억 세금도 안 내고, 감치도 피하고 있는 A 씨.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며, 국민의 불쾌지수 높이는 이런 문제, 속 시원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악성 체납자에 부여된 이중삼중의 방어막

A 씨의 사례를 보면, 국가가 세금 안 냈다고 막무가내 체납자들을 몰아세우지는 않는 걸 알 수 있다. 아닌 것 같다고? 위의 괄호 표시 안의 낱말에 이미 힌트가 담겨 있다. <즉시 항고>는 감치 명령을 받은 자가 '즉시 감치'를 피할 수 있게 국가가 배려한 장치다. 마치 단두대에 오른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잠깐, 나 억울해. 재판 한 번 더 받을 거야"라고 외치면 풀어주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도대체 악성 체납자들을 얼마나 배려한 건지는 그 이전의 과정을 살펴보면 더 잘 이해가 간다. 국세청에는 세금 계속 안 내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시스템이 있다. 그 중에 체납 발생일이 1년을 지나고 체납액이 2억 원 이상이면서 이 기간 동안 3회 이상 체납할 경우라는 3단계 조건을 통과해야 감치 후보에 오른다.

체납된 국세의 내용

여기에 해당 체납자가 납부 능력이 있는데도 정당한 사유 없이 체납했다는 근거까지 국세청이 확보해야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근거를 확보했다면 이제 국세정보공개심의위원회(심의위)를 열어 감치 필요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 국세청은 심의위를 거친 대상자를 감치해달라고 관할 검찰에 신청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검찰의 시간. 검찰은 감치가 합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법원에 감치 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무조건 청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은 건 법원이다. 법원이 '감치 결정'을 해야만 비로소 '악성 체납자'를 가둘 수 있다.

그런데 체납자는 <즉시 항고>를 통해 1차 방어가 가능하다. 감치가 됐더라도 밀린 세금 완납하면 <최장 30일>이 아닌 즉시 풀려나는 2차 방어도 남아 있다. 감치를 피해 도주한 집에 국세청 직원들이 찾아와서 일주일, 한 달 이상 문을 두드려도 안 열어주면 그만이다. 이 정도면 신공에 가까운 방어권을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악성 체납자에 대한 감치 제도를 유명유실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배드 파더(양육비 지급 안 하는 부모)'에 대해 집행되는 감치 제도를 터 잡으면 될 일이다. '배드 파더' 감치 제도는 법원의 감치 명령을 받은 자가 1년 이내에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감치 명령을 받아도 1년이 지나면 그 효력이 스르륵 사라지는 체납자 감치 제도와는 천양지차다.

A 씨가 이렇게 '감치 결정일'로부터 1년, 그러니까 내년 2월까지 도피에 '성공'한다면, 국세청은 A 씨를 감치 후보에 올리는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야말로 코미디 같은 도돌이표 행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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