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진단 후 남긴 두 유언… ‘의사능력’에 法 판단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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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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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파트·용인 땅 서울대 기부
생전 “의사 아들 불효… 재산 환원”
치매 환자 유언, 의사능력 보여줄
객관적 자료 따라 법원 판단 갈려
국민일보DB

치매 진단을 받은 뒤 거액의 부동산을 대학에 기부하겠다고 한 부친의 유언은 효력이 있을까. 의사인 아들이 재력가였던 부친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항소심도 “유언 작성 당시 분명한 의사 능력이 있었다면 효력이 있다”고 판결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24부(재판장 김시철)는 최근 장남 A씨가 부친 유언은 무효라며 서울대 법인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A씨 부친은 2014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와 경기도 남양주·용인 일대 땅을 서울대에 기부한다는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했다. 2020년 부친이 사망하자 A씨는 부친의 2009년 치매 진단 등을 근거로 소송을 냈다.

1·2심 법원은 A씨 부친이 2009년 섬망과 함께 뇌경색, 실어증 증상 등이 있었던 사실은 인정했지만 2014년 유언 작성 당시 유언 능력이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2010년 A씨는 ‘부친이 심신 박약상태’라며 한정치산선고 심판사건도 청구했었다. 부친은 당시 심문에서 “장남이 의대 교수인데 불효자로 (나한테) 대들어 고통스럽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이런 상황 등을 감안했을 때 “사무 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섬망 등 특정 상황에서만 의사능력이 제한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치매 환자의 유언 효력을 따지는 소송에서 법원은 유언장 작성 당시 법률적·경제적 효과를 이해할 의사능력이 있었는지 여부를 주요 기준으로 판결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의사능력이 있었다면 임시후견인 동의 없이도 유언할 수 있다”며 생전 중증도 치매를 앓았던 B씨의 자필 유언장 효력을 인정한 2심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B씨 조카가 유언이 무효라며 낸 소송에서 2심은 1심을 뒤집고 “유언장 의미나 결과를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결여돼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냈다.

반대로 증세가 악화해 정상적 판단이 어려운 경우에는 무효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2016년 C씨가 외삼촌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 소송에서 C씨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외삼촌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누나(C씨 모친)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고, 이후 모친은 ‘재산관리를 동생에게 맡기고 사후 모든 재산을 동생들에게 준다’는 약정서와 유언장을 작성해 공증도 받았다. 외삼촌은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마친 상태였다.

1심은 “당시 C씨 모친의 치매 증상이 상당히 진행돼 법률적 의미와 효과를 이해하지 못했다”며 약정서와 유언장, 소유권 이전 전부를 무효라고 판결했다. 1심 판단은 대법원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전문가는 유언장 작성 당시의 의사능력 여부를 확실히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중요하다고 했다. 채애리 상속 전문 변호사(법무법인 온조)는 “유언 공증을 하는 당일에 의사능력이 있다는 병원 진단서를 받아오라고 조언한다”며 “당시 상태를 보여주는 영상을 남기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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