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상속 포기한 조부모 빚, 손주가 대신 안 갚아도 돼"

입력
기사원문
박준규 기자
TALK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보험사 구상금 못 갚고 사망한 조부모
배우자는 한정승인, 자녀는 상속포기
손주에게 채무 승계... 소송전 벌어져
"채무 승계 막으려는 기대 파악해야"
게티이미지뱅크


부모가 사망한 조부모의 채무 상속을 포기했다면 손자녀가 대신 갚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3일 사망한 A씨의 손자녀 4명이 서울보증보험을 상대로 제기한 승계집행문 부여에 대한 이의신청을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보증보험은 2011년 A씨를 상대로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하지만 A씨는 2015년 4월 돈을 갚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A씨 사망 이후 배우자와 자녀들에겐 '상속'과 '상속 포기' 선택지가 있었다. 상속하면 재산과 채무를 모두 받는다. A씨 배우자와 자녀들이 서울보증보험에 돈을 대신 갚아야 하는 것이다. 상속을 포기하면 재산과 채무가 손자녀들에게 넘어간다.

일가족은 상속을 받되 구상금을 최소한으로 갚는 방법을 택했다. A씨의 배우자가 한정승인을 했고, 자녀들은 모두 상속을 포기해버렸다. 한정승인은 재산과 채무를 상속받되 물려받은 재산 범위에서만 빚을 갚는 것이고, 상속 포기는 아무것도 받지 않는 것을 뜻한다. 한정승인을 하면 승계받은 재산이 채무보다 적더라도 개인 자산으로 부족분을 변제하지 않아도 된다. A씨의 배우자가 혼자 구상금을 감당하는 것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문제는 자녀들의 상속 포기로 손자녀들에게까지 A씨 채무가 승계됐다는 점이었다. A씨 채무를 △배우자 11분의 3 △손자녀 4명이 1인당 11분의 2씩 공동으로 상환하게 된 것이다. 손자녀들이 상속 포기를 하지 않은 사이 서울보증보험은 2020년 A씨의 배우자와 손자녀를 상대로 승계집행문을 법원에 신청해 받아냈다. 승계집행문은 서울보증보험이 A씨 배우자와 손자녀를 상대로 구상금에 해당하는 돈을 받도록 강제하는 문서다.

A씨 손자녀들은 서울보증보험을 상대로 승계집행문에 대한 이의를 법원에 제기했다. A씨의 배우자만 홀로 상속을 받았기 때문에 손자녀들에게까지 상속을 인정하는 건 위법하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하급심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하면 손자녀들이 조부모의 배우자와 공동상속인이 된다는 기존 대법원 판결을 따른 것이다. 손자녀들은 이에 "하급심 판단이 부당하다"며 특별항고를 제기했다.

돈다발. 게티이미지뱅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하급심이 재산권을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침해했다"며 손자녀들의 손을 들어줬다. 자녀가 모두 상속을 포기하면 사망한 조부모의 상속분은 배우자에게 귀속된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자녀들은 부모의 채무가 자신은 물론 자신의 자녀에게도 승계되는 효과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상속을 포기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보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대와 법 감정에 반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손자녀를 공동상속인으로 간주한 종전 판결 이후의 실무를 보더라도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됐더라도 상속을 포기하면서 조부모의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이 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쓸모없는 절차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결과"라며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해석함으로써 법률관계를 간명하게 확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