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보험만 믿었는데 날벼락…누굴 원망하겠나 ‘고지의무’ [어쩌다 세상이]
보험설계사에 알리는 것은 효력 없어
“보험가입 후에도 직업 바뀌면 통지를”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통상의 위험률을 가진 사람이 아닌 보험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람, 즉 사행적 목적을 가진 사람이 자진해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겠죠.
이런 측면에서 상법은 보험계약자 측에 ‘고지의무’라는 것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고지의무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보험사고 대상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보험계약의 중요한 사항을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의무를 말합니다. 과거 질병, 입원 이력이나 직업 등이 해당하죠.
고지의무를 위반하게 되면 보험계약이 해지되고 보험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직접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질병, 상해 등을 보장하는 보험계약은 여전히 주변의 보험설계사를 통해 가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보험계약 시 작성하는 서류를 보험계약자가 직접 작성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보험계약자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은 보험설계사가 보험사에 고지할 사항에 그 내용을 적어 넣고 보험계약자로부터는 사인을 받는 형태로 계약이 체결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자로부터 고지 내용을 잘못 듣고 기재하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보험계약자와 짜고 보험사에 알려야 할 사항을 알리지 않기로 하고 보험계약을 진행하기도 하죠.
안타까운 사례를 하나 소개합니다.
A씨는 2016년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실손보험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지급한 병원비 중 일부를 보상해 주는 보험입니다. 실비보험이라고도 부르죠.
실손보험 청약서에는 ‘최근 5년 이내 수술을 한 사실’을 계약 전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사항으로 정해 두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 구체적으로 수술을 한 사실이 있다면 그 치료기간까지 구체적으로 기재하도록 돼 있었죠.
A씨는 나름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 4년 전인 2012년에 수술을 받은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청약서를 받으러 온 보험설계사에게 수술을 받고 12일을 입원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보험설계사가 청약서에 ‘12일’을 ‘2일’로 적었습니다. A씨의 말을 잘 못 듣고 적은 것이었죠.
A씨는 보험설계사가 작성한 서류를 다시 한 번 꼼꼼히 확인하지 않고 모든 사인을 마쳤습니다.
이후 몇 년이 지났습니다.
A씨는 뇌졸중으로 신체가 마비됐고 장기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A씨는 병원비가 많이 나왔지만 실손보험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고 추후 보험금 청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보험사는 A씨가 과거 12일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음에도 3일간 입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거짓 고지를 했으니 보험계약을 해지하고 보험금을 줄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A씨는 처음에는 보험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콜센터를 통해 보험가입 시 작성됐던 청약서를 받아 확인 후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정말로 수술 후 입원기간이 ‘2일(3일째 퇴원)’로 기재됐던 것이었죠.
결국 A씨는 보험금도 못 받고 믿었던 보험계약도 해지되고 말았습니다.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꼭 보험설계사에게 알린 사실이 제대로 청약서에 기재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소개한 사례와 같은 당황스런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서 결국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만큼 비용과 시간, 그리고 마음고생까지 더해집니다. 결과도 승소를 장담 못하죠.
법무법인 한앤율 한세영 변호사는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필요할 때 보상을 받기 위함”이라며 “보험 가입 후 직장이나 직무가 변경됐을 때 이를 보험사에 통지하지 않으면 추후 보험금 분쟁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변호사는 “특히, 보험계약 당시와 비교해 바뀐 직업의 특성상 상해 등의 위험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졌을 경우 반드시 보험사에 통지해야 한다”며 “보험가입 때는 사무직이었으나 추후 현장직으로 바뀌었을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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