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눈 뜨고 코 베이는 '택배 착불 사기'…누구나 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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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5.18. 오전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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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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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코 베이는 택배 착불 사기

▷ [단독] "억대 시계, 착불 택배로 거래하자"…검은 속셈은 이란 기사가 SBS 8 뉴스(5월 16일) 때 보도됐습니다. 댓글 몇 개를 읽어봤습니다. 사기 피해자를 비난하는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1억 원이 넘는 시계를 어떻게 택배로 보낼 수 있냐는 반응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n/?id=N1006752370 ]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저 또한 처음에 제보를 받았을 때 그랬습니다. 고가 시계를 무턱대고 택배로 보낸다는 게 이상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기 피해자인 제보자로부터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니까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방심하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게 '택배 착불 사기'입니다. 피해자 역시 눈 뜨고 코 베인 꼴입니다.

"부산에서 투자컨설팅 하는 사람입니다."

사기 피해자는 자신의 고가 시계를 1억 1천4백만 원에 팔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판매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한 명이 연락해 왔다고 합니다. SNS 프로필 사진은 가족사진이었습니다.


시계를 사겠다고 한 남성은 자신을 부산에서 투자컨설팅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본인이 시계를 사고 싶다고 했고, 자연스레 가족 이야기를 꺼내며 일상적인 얘기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에서…차일피일 만남 미뤄

피해자는 처음에 우편 거래는 못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1억 원이 넘는 고가 시계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도 이 부분에 동의하고, 만남 날짜를 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살고 있는 지역도 자연스레 알게 됐습니다. 이들은 서울에서도 보기로 했었고, 부산에서도 보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시계를 사겠다는 남성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을 계속 취소한 겁니다.

"CCTV 있는 편의점 택배 거래 합시다"

부산에 산다는 이 남성은 약속을 취소하면서 제안을 합니다. 자신이 너무 바쁘니까 편의점 택배로 보내달라는 겁니다. 편의점은 어느 곳이나 내부에 CCTV가 있으니 도난당할 일도 없고 안전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여전히 1억 원 넘는 시계를 보내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택배 영수증만 보내면 바로 입금…단, 착불로

이때 이 남성이 또 다른 제안을 합니다. 편의점에서 택배를 부치고, 영수증을 찍어서 보내주기만 하면 바로 입금을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시계를 수령하기 전에 대금 1억 1천2백만 원을 모두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사기 피해자는 시계 값을 받는 게 중요하다보니까, 이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택배를 맡길 때 꼭 착불로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명분은 있습니다. 택배기사가 착불 운송료를 수령자로부터 직접 받아야하는 만큼 배달 사고가 날 확률이 적다는 겁니다. 피해자도 이 말이 일리가 있다고 보고 순순히 택배를 착불로 맡겼습니다.

계속 걸려오는 전화…"입금 중이다."

피해자는 택배 운송장 번호, 그리고 편의점명이 나와 있는 영수증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줬습니다. 이때만 해도 시계가 든 상자가 편의점에 있으니까 도난당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피해자 휴대전화는 이때부터 전화가 계속 걸려오기 시작합니다. 시계 값을 바로 보내주겠다는 남성의 전화입니다. 이체 금액이 커서 두 번에 나눠서 보내주겠다는 등 핑계를 대면서 전화 통화를 계속합니다. 통화는 10분 이상 계속됐습니다. 피해자는 편의점 내부에서 계속 서 있는 게 눈치가 보이는 만큼 밖에 나와서 통화를 이어갔습니다.
 

편의점에 나타난 또 다른 남성…6분 만에 시계 들고 사라져

피해자가 통화를 하는 사이 또 다른 남성이 편의점에 등장합니다. 제보자가 편의점에 시계가 든 상자를 맡긴 지 10여 분 만입니다. 편의점 CCTV 영상을 보면, 이 남성은 편의점에 들어온 지 6분 만에 시계를 들고 바로 사라집니다. 이 남성은 부산에서 시계를 사겠다는 남성과 한통속인 범죄조직이었습니다.


이 남성이 택배를 가지고 나올 수 있었던 건 '착불'로 맡겼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맡길 때 운송료를 선결제하지 않았습니다. 택배 신청만 한 겁니다. 이 때문에 카드 결제 취소 등 환불 절차가 없었습니다. 그냥 택배 신청만 취소하고 물품을 찾아오면 되는 겁니다.
 

편의점 직원까지 속인 CCTV 영상 속 공범…"퀵 배달기사다"

착불이라고 해도 절차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택배를 최초에 맡긴 사람인지 확인하고 물건을 돌려주는 게 상식입니다. 당시 택배를 돌려주었던 편의점 직원과 통화했습니다.


시계를 들고 간 공범 남성은 자신을 퀵서비스 배달 기사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당시 직원에게 조금 전 맡긴 택배 물건을 찾아서 배달하라는 지시를 받고 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당시 찍어서 보내준 택배 운송장 번호와 영수증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편의점 직원은 그래도 본인이 아니니까 택배 물품을 줄 수 없다고 난색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 물건을 맡긴 당사자를 바꿔줬습니다. 피해자를 사칭한 제3의 인물이었습니다. 편의점 직원은 결국 휴대전화로 바꿔 준 인물이 조금 전 택배를 맡긴 사람이라 믿고 물건을 돌려줬습니다.

피해자는 통화가 길어지고, 입금이 되지 않자 그때서야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습니다. 황급히 편의점으로 들어갔지만, 이미 CCTV 속 남성이 시계를 들고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도난 시계는 어디로? 다시 매물로 올라와

피해자가 사기 당한 시계는 O사가 2017년에 만든 제품입니다. 국내에 몇 개 없는 모델인 만큼 희소성이 큽니다. 피해자 아들이 사기 소식을 듣고 시계 중고거래 사이트에 피해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시계를 찾아주면 사례금까지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때 한 시계업자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같은 모델이 매물로 나왔다는 겁니다. 피해자는 포장 상태 등을 물어봤을 때 본인의 시계임을 확신했습니다. 이때 시계 업자와 협업해 해당 물건을 살 것처럼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경기 김포시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확인 결과 사기 당한 시계와 동일하자 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운반책 1명 검거…일당 50만 원 제안에 수락

김포에서 경찰에 붙잡힌 운반책은 사실 이 범행과 무관한 인물로 드러났습니다. 일당 50만 원을 주겠다는 글을 보고, 선뜻 나선 겁니다. 대부분의 보이스피싱 운반책과 같은 역할이라고 보면 됩니다. 운반책은 경찰에게 도난당한 시계를 파는 일인지도 몰랐고, 그저 물건을 건네주고 돈을 받아오면 된다는 말에 일하기로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 편의점 CCTV 속 남성 추적 중…상자에서 지문 검출

경찰은 CCTV 영상에서 택배 상자를 가져간 남성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범행 당시 이들이 사용한 휴대전화는 일명 '대포폰'이어서, 추적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단 택배 상자를 국과수에 의뢰해 5명의 지문을 채취한 상태입니다. 경찰은 이들 조직이 보이스피싱 범죄조직과 동일한 형태로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중간책 정도만 활동하고, 총책은 중국 등 해외에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피해자는 처음에 본인이 당한 사기 사건이 방송에 나가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창피하기 때문입니다. 1억 원이 넘는 시계를 택배를 보낼 생각을 했다는 게 창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인과 같은 추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고자 제보를 결심하게 됐다고 합니다. 기존에도 이와 비슷한 택배 착불 사기 사건이 더러 있습니다. 이번 피해 내용을 종합해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고가 물품, 택배거래 하지말자

당연한 말입니다. 고가 물품은 택배를 거래해서는 안 됩니다. 택배를 부칠 때는 상자 안에 든 물품이 무엇이고, 얼마짜리인 적도록 돼 있습니다.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한 편의점 업체는 물품 금액이 100만 원을 넘으면 택배를 맡길 수 없도록 합니다. 왜냐하면 물품이 도난당했을 때 최대 100만 원까지만 보상 가능한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고가의 물품을 택배를 부쳤다가 잃어버려도 대신 책임져줄 사람은 없습니다.

②편의점 착불 택배 요구하면 의심하자

이번 범죄에서 나타난 특이점은 '편의점 착불 택배'입니다. 편의점은 택배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 아닙니다. 고객 편의를 위해서 택배 업체와 제휴를 맺고 대행 역할을 할 뿐입니다. 대부분의 편의점 업주들이 택배 물품을 잘 관리하고 있지만, 누군가 절도 등 범죄 행위를 할 목적으로 접근할 때 취약할 수도 있습니다. 범죄자 입장에서는 편의점주가 바쁜 틈을 노려 절도를 할 수도 있고, 이번 경우처럼 속일 수도 있는 겁니다.

또 착불 택배는 앞서 말했듯이 운송 취소 과정이 덜 복잡합니다. 선결제를 하지 않은 만큼 카드 결제 취소도 필요 없습니다. 편의점주 허락을 맡고 물품을 돌려받기만 하면 됩니다. 편의점 직원들로 하여금 '사기 행각'을 벌여 물품을 빼돌릴 수 있습니다.

③ 은행 점검시간 맞춰 거래 유도하면 의심하자

피해자는 밤11시 반이 지나서 편의점 택배를 부쳤습니다. 당시 부산에 있다는 남성이 가족들과 밖에 있다는 이유로 거래 시간을 늦췄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택배를 부친 시간도 11시 반쯤이고, 그 이후 이 남성과 통화한 시간은 자정이 다 된 시간입니다.

이번 피해자가 겪은 내용은 아니지만, 다른 유사 피해 사례를 보면 입금을 지연하기 위해 은행 점검 시간을 핑계로 든다고 합니다. 은행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밤 11시 50분부터 다음날 새벽 0시 10분쯤 사이 점검시간이 있습니다. 이때는 계좌이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점을 노려 시간을 끌고, 택배 물건을 가져나오는 수법입니다.

④ SNS 프로필이 최근에 변경한 가족사진이면 의심하자

100%라고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기 조직은 소위 '작업'을 할 때 대포폰을 사용합니다. 이때 SNS 계정도 새로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SNS 프로필 사진도 최근에 변경합니다. 그만큼 오래된 프로필 사진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러한 조직의 또 다른 특징은 사진으로 가족사진을 해놓습니다. 상대방을 안심시킬 목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사진 역시 모도 도용된 것입니다. 이들은 거래를 할 때도 계속 배우자 얘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려 합니다. 이번에 피해자가 이들 조직과 통화한 내용을 들어보면 배우자 얘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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