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꽂힌 15억 비트코인 꿀꺽…대법, 1·2심 뒤집고 무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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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3.13. 오전 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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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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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SOS]
암호화폐 오입금 관련 민원은 늘고 있지만, 구제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 셔터스톡
암호화폐 투자자 A씨는 지난해말 청천벽력같은 일을 겪었다. 코인 거래소에서 구매한 1억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본인 소유의 전자지갑으로 옮기려다가 주소를 잘못 입력한 것이다. 출금 잔고는 텅 비었지만, 1억원은 온데간데없이 증발했다. A씨는 황급히 출금한 거래소에 오입금을 신고하고, 복구를 요청했다. 하지만 보안상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재 암호화폐 시장에서 오입금 민원은 늘고 있지만 구제 장치는 미비하다. 은행의 착오송금처럼 암호화폐 투자자가 실수로 지갑 주소를 잘못 입력할 때 발생하는 게 오입금이다. 현재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는 오입금 복구 작업을 지원하지만, 배상 책임은 없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예금보험공사가 착오송금 된 돈을 찾아주는 제도(착오송금 반환지원)를 마련한 은행권과 비교가 된다.

24시간 복구 처리엔 100만원
더욱이 암호화폐는 기술ㆍ보안 요인으로 복구 작업이 안되는 사례도 많다. 대표적으로 코인을 이체할 때 네트워크 설정이 어긋나면 복구가 어렵다. 업비트 관계자는 “블록체인 세계에선 서로 다른 네트워크에도 동일한 지갑 주소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입금 주소가 ‘중앙로 1가 1번지’라면 도시명(네트워크)도 정확하게 써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ㆍ부산 등 도시명이 바뀌면 오입금을 해결할 수 없어서다.

복구비로 10만원 안팎의 수수료도 청구된다. 하루(24시간) 안에 해결하는 조건으로 100만원을 받는 곳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우선 소량(의 코인)으로 입금 테스트를 해본 뒤 이체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뿐이 아니다. 착오송금한 암호화폐를 타인이 써도 처벌이 어렵다. 금융감독원 금융감독판례에 따르면 최근 잘못 이체된 비트코인을 자신의 다른 전자지갑에 옮겨 쓰더라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5억 비트코인 ‘꿀꺽’해도 무죄?
판례에 따르면 B씨는 2018년 6월 자신의 전자지갑에 주인을 알 수 없는 199.999 비트코인이 이체된 것을 발견했다. 당시 시세로 14억8000만원 상당이었다. B씨는 비트코인을 그가 보유한 전자지갑 두 곳에 나눠 담았다. 이는 한 그리스인이 착오송금한 코인이었다. 이듬해 B씨는 검찰 기소로 재판받기 직전 그리스인에게 158 비트코인을 돌려줬다.

1ㆍ2심 재판부는 배임 혐의로 유죄를 판단했다. 비트코인도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재산인 만큼 B씨가 비트코인을 보관할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비트코인이 경제적 가치가 있는 건 맞지만,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인불명으로 재산상 이익인 가상자산을 이체받은 자가 가상자산을 사용ㆍ처분한 경우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법적으로 암호화폐가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라며 “(암호화폐 투자자는) 확실한 제도권 보호를 받기 전까지는 거래할 때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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