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동생 밥 챙기러 가느라”…자전거 절도 용서받은 7남매 맏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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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2.25. 오후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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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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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오산경찰서.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빨리 집에 가 동생들의 끼니를 챙기려고 자전거를 훔친 고등학생이 처벌 대신 선처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경찰은 7남매의 맏이인 이 학생을 행정기관에 연계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25일 경기 오산경찰서에 따르면 고등학생 A군은 지난해 11월20일 지구대를 찾아 ‘자전거를 훔쳤다’며 자수했다. 지구대에는 이틀 전 “누군가 내 자전거를 훔쳐 갔다”를 신고가 접수된 상태였다.

경찰 조사 결과 A군은 아르바이트를 마친 뒤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가던 도둥 아파트 단지 자전거 보관대에 잠금장치 없이 세워져 있던 자전거 한 대를 타고 갔다.

A군은 “평소 친구가 타던 자전거와 비슷하게 생겨 친구의 자전거로 착각했다”면서 “빨리 여섯 동생의 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르느라 그랬다”고 진술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오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는 A군의 범죄 대신 어려운 형편에 주목했다.

A군은 6남1녀, 다자녀 가정의 장남으로 학생이지만 생계를 위해 집 근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A군의 아버지는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나 49㎡짜리 국민임대아파트에서 주거하며 9명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 열악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심부전과 폐 질환 등으로 투병 중이다. A군은 중학생·초등학생·유치원생·생후 7개월 된 영아 등 총 6명의 동생이 있다.

아버지 소득이 있고, 어미니가 통원 치료 등에 이용하는 차량을 보유한 A군의 가구는 기초생활수급이나 차상위 등 취약계층 선정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경찰은 이 가정이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고 판단하고 가정 방문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을 조사했다. 이후 주민센터와 보건소 등 관계자들과 합동으로 A군의 보호자를 면담했다. 그 결과 오산경찰서와 오산시·주민센터·청소년센터·보건소 등 7개 기관이 지난 6일 통합 회의를 열어 A군 가정에 복지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월 320만원씩 3개월간 긴급복지지원이 이뤄지며 이불, 라면 등 가정후원물품이 전달될 예정이다. 급식비와 자녀 의료비로 각 30만원씩, 안경구입비로 10만원이 지급된다. 소독 등 주거환경개선 지원도 이뤄진다. 매입임대 등 주거 지원도 검토 중이다.

경찰은 A군의 자전거 절도 사건에 대해서는 지난달 11일 선도심사위원회를 개최해 즉결심판 처분을 내렸다. 법원은 벌금 1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사실상 없던 일로 해주는 판결이다.

경찰 관계자는 “A군의 가정이 어려운 형편에도 밝은 집안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면서 “앞으로 7남매가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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