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 중 사라진 ‘1천억대 코인’...법원 "증거 없이 추징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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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2.13. 오후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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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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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법, 1심 추징금 파기...1476개 비트코인 행방 놓고 도박운영자-경찰 '장외 공방'

 광주지방법원
ⓒ 안현주

불법 도박사이트 범죄수익금 압수수색 과정에서 벌어진 '비트코인 1476개 도난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수백억원의 추징금을 도박사이트 운영자에 부과했던 1심 판단을 파기했다.
 
사라진 비트코인이 도박사이트 운영자 측에 흘러 들어갔다는 경찰 수사 결과 등을 토대로 1심 법원은 600억원대의 추징금을 부과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도난된 비트코인과 관련해선 추징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나아가 피고인 측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경찰이 빼돌린 것 아니냐"며 화살을 돌렸고, 경찰은 "도박사이트 운영자 일당이 가져간 게 맞다"며 1000억원대(현 시세) 비트코인 행방을 놓고 공방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다.
 
광주지방법원 형사3부(재판장 김성흠 부장판사)는 13일 도박공간 개설·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아무개(여·35)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열고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압수된 비트코인 320개는 몰수 처분토록 하고, 이와 별개로 15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딸 이씨는 부친과 공모해 2018~2021년 비트코인을 매개한 불법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기간 도박 대금으로 입금받은 비트코인만 2만4613개에 이르고, 환산 금액은 1심 변론 종결 당시 4000억원에 육박했다.
 
이씨는 부친이 2019년 2월 태국 경찰에 붙잡혀 국내로 송환, 징역 13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자, 부친의 뒤를 이어 도박사이트 운영과 범죄수익금 은닉을 총괄한 것으로 조사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등 제기된 혐의 모두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양형은 대폭 줄었다.
 
1심은 징역 5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2년6월을 선고했다.
 
추징금 역시 608억원을 부과했던 1심과 달리 15억원으로 책임을 대폭 줄였다. 수감 중인 부친 변호사 선임 비용 등에 쓴 범죄수익금에 대해서만 추징을 명령하고, 경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사라진 1476개의 비트코인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것이다.

사건 브로커, 비트코인 환전 연루 정황 나오기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상장을 승인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시세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와 관련 항소심 재판부는 "추징의 경우 범죄 구성 요건에 관한 부분은 아니기 때문에 엄격한 증명은 필요하지 않지만, 증거에 의해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원심은 피고인이 비트코인이 중간에 사라지는 과정에 개입했다고 보고 추징을 명령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이 사건에서 추징 명령은 피고인에게 부담이 된다"고 덧붙였다.
 
줄어든 양형과 관련해서는 "피고인의 범행 및 가담 경위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선고에 앞서 이씨는 재판부를 향해 선고기일을 늦춰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배경에는 비트코인 도난 사건과 자신이 관련돼 있다는 재판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면서, 이는 자신과 무관하다며 선고를 늦춰 증명할 기회를 달라는 취지였다.
 
이씨는 선고를 마치고 법정 밖에서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서도 거듭 비트코인 탈취 의혹을 부인했다. 이씨를 비롯한 그의 지인들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비트코인이 사라졌다. 현재로선 경찰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씨는 줄곧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으나 지난달 초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풀려났다.

이씨의 주장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사라진 비트코인은 이씨 부녀가 탈취한 것이 맞다"며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수사 결과를 통해 증명해 내겠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이어 "국내외 코인 거래소에 해당 비트코인을 환전할 수 없도록 '동결 조치'를 취해둔 상태"라고 덧붙였다.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지난 2021년 11월 이씨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이씨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798개를 압수하는 절차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1476개의 비트코인이 돌연 사라졌다.
 
이와 관련, 경찰은 일일 거래량 제한 탓에 압수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틈을 타 이씨 부녀 일당이 비트코인을 탈취해 갔다고 보고 후속 수사를 진행 중이다.

사라진 비트코인 행방을 두고 1심 재판부는 "누군가 피고인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압수수색)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1476개)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갔다" "비트코인을 압수하는 과정에서 제3자가 피고인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을 이체해 간 이례적인 상황이 있었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이 사건 비트코인 환전 및 범죄수익 은닉 작업과 관련해 사건 브로커 성아무개(63·구속 재판 중)씨, 그리고 성씨에게 18억원대의 코인 투자 사기 관련 검경 수사 무마 로비자금을 건넨 탁아무개(45·구속 재판 중)씨가 관여한 정황이 지난해 11월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광주광역시경찰청 청사.
ⓒ 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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