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행정구금된 난민신청자에…헌재 “정부, 보상의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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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1.25. 오후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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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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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외국인 보상 관련 ‘법의 빈틈’은 인정
“보상법 마련할 헌법상 의무 없어” 소송 각하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예멘인 난민신청자들이 2018년 9월14일 오전 제주시 용담동 제주출입국·외국인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1. 고국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던 ㄱ씨는 2016년 3월 위조 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와 난민인정신청을 했다. 난민법 20조는 고국을 떠나기 위해 가짜 신분증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난민을 위해 별도 조항도 두고 있지만, ㄱ씨는 여권을 위조했다는 이유로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다. ㄱ씨는 소송을 통해 여권 위조가 불가피했고 난민신청도 정당했다는 확인을 받았지만, 483일이나 위법하게 구금 생활을 해야 했다.

#2. ㄴ씨는 종교적 이유로 고국을 떠나 2015년 10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곧장 난민신청을 했지만 출입국당국은 “난민신청 사유가 없다”며 자의적으로 접수를 거부했고, ㄴ씨는 졸지에 ‘공항 난민’이 됐다. 결국 ㄴ씨는 소송을 거쳐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이 위법했다는 법원의 인정을 받았지만, 이미 1년 넘게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 구금된 뒤였다.

25일 헌법재판소는 위법하게 행정구금을 당한 ㄱ씨와 ㄴ씨 등 외국인들에게 형사보상법을 유추 적용해 적절한 보상을 해달라며 청구한 헌법소원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위법하게 행정구금을 당한 외국인에 대한 ‘보상법’까지 마련해야 할 헌법상 의무는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헌재는 “출입국관리행정의 외국인 입국·체류에 관한 사항은 주권국가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광범위한 정책 재량의 영역”이라며 “강제퇴거대상자는 대한민국에 체류할 수 없을 뿐 본국이나 제3국으로 자진출국해 보호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사정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청구인들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에 대해 국가가 ‘형사보상’을 하는 것처럼 위법한 행정구금에도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형사 사건의 체포·구속과 달리 ㄱ씨와 ㄴ씨처럼 위법하게 행정구금을 당한 경우는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2020년 형사보상에 준하는 위법한 구금에 대한 보상을 청구했다가 법원에서 기각되자, 2021년 행정구금 보상법제에 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이 사안이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법의 빈틈’은 인정했다. 헌재는 “형사보상법은 형사사법작용에 의해 신체의 자유가 침해된 자에 대한 보호를 목적으로 마련된 것”이라며 “행정구금으로 신체의 자유가 침해된 자에 대한 보상은 입법자가 처음부터 아무런 입법을 하지 않았다고 봐야 하고, 별도 법률에 의한 보호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법상 국회가 입법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은 ‘법률 부존재’는 헌법소원으로 다툴 수 없다.

청구인들을 대리한 이한재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헌재는 이번 각하 결정을 통해 행정상 위법하게 구금된 외국인에게 대한민국의 그 어떤 법으로도 보상해줄 길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라며 “이는 국제인권규범인 자유권규약의 심각한 위반이기 때문에 앞으로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제소 등을 통해 다툴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이미 1990년에 비준한 유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은 자의적 구금을 금지하며, 불법구금된 피해자가 피해보상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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