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분당선 민자사업자 ‘무임승차 손실’ 338억, 정부가 메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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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1.03. 오전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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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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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약 단계서 예측 가능한 리스크 대응 못해” 비판도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신분당선 전철의 민자사업자에게 무임수송으로 인한 손실 338억원을 보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최초 민간투자협약을 맺을 때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비용인데도 협의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큰 비용을 치르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는 지난 21일 신분당선 주식회사가 ‘노인·장애인·유공자에 대한 운임 유료화가 지연되면서 생긴 손실 337억7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손실보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이자까지 합하면 정부는 신분당선 주식회사에 377억5천만원을 보상해야 한다.

신분당선은 수익형 민자사업(BTO) 방식으로 건설됐다. 민자사업자가 전철을 짓고 정부에 소유권을 기부채납한 뒤 30년간 무상으로 전철을 운영해 투자비와 적정 이윤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협약 당시 정부와 민자사업자는 신분당선의 노인 등 무임수송을 전체 수요의 11%로 예상했는데, 개통 초기 5년에 한하여 5%만 반영해 예상운영수입을 책정했다. 5년간의 무임수송 비용을 민자사업자가 일부 나눠 부담하고 6년차 이후 비용 지원에 대해서는 추후 재협의하기로 한 것이다.

경영상황 악화를 이유로 무임승차 폐지를 주장해온 신분당선 민자사업자는 2017년 7월 노인 등에 대한 무임수송을 ‘전액 유료화’하는 운임변경을 국토부에 신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수도권 전철 중 노인 운임을 유료화한 사례가 없다”며 차일피일 논의를 미뤄왔다. 2020년 기획재정부 민간투자사업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민자사업자 쪽은 2021년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정부가 예상운임수입에 대한 ‘재협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부는 민자사업자 쪽의 재협의 요청에 대응해 마치 무임승차 제도를 변경할 것처럼 외관을 형성했을 뿐, 매번 여론 수렴과 사회적 영향 등을 이유로 합의를 미뤘다”며 “민자사업자에 계속해서 무임승차 및 운임 할인을 시행할 수밖에 없게끔 사실상 강제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노인 등에 대한 운임을 전액 유료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보이지 않는다”며 △무임수송 대상 축소 △유임승객 운임 상승 △무임수송 손실 직접 보전 △무상사용 기간 연장 등 다양한 대안이 열려있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하지만 정부의 재협의 의무 불이행 책임을 인정해 민자사업자 쪽 청구금액을 전액 인정했다. 2016년 12월부터 2020년까지 무임수송 인원 4380만명에게 별도운임(900∼1000원)을 유료화했을 시 예상 수입이다. 정부가 충분히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었는데도 논의를 미루다 가장 비싼 값을 치른 셈이다.

전문가들은 재정을 아끼려 진행한 철도 민자사업에서 오히려 더 많은 재정이 보상금으로 투입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민자사업은 정부가 초기 재정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사업 방안 중 하나인데, 우리 정부의 민자사업은 대부분 초기 예측보다 더 많은 재정 부담을 떠안는다”며 “협약 단계에서 예측 가능한 리스크에 대응하지 못하거나 민자사업 관리 차원에서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정부와 민간 철도사업자의 분쟁현황’을 보면 정부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철도 민자사업자와 벌인 소송에서 패소하거나 중재 결정을 받아들여 1771억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신분당선은 민간사업자의 이윤 확보를 위해 다른 노선보다 높은 요금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개통 초기 10년간은 최소운영수입 보장(MRG) 협약에 따라 정부가 수요예측 실패로 인한 손실까지 보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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