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성 학대’ 저지르면 미국선 중범죄···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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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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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경기 이천에서 벌어진 성 학대 사건으로 상해를 입었던 당시 생후 3개월령 강아지의 모습. 동물학대방지연합 페이스북 갈무리.


2019년 5월 16일 경기 이천시에서 20대 남성이 수족관 앞에 묶여있던 생후 3개월 수컷 강아지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동물보호단체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리면서 공분을 산 이 사건은 국내에선 사실상 처음으로 동물 성 학대가 공론화되는 계기가 됐다.

이 강아지를 ‘수간’하면서 전치 7일의 상해를 입힌 남성에 대해 재판부는 동물학대죄와 형법상 공연음란죄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밖에 보호관찰과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 사회봉사,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3년간 취업 제한 명령 등도 선고 받았지만, 이는 이 남성이 같은해 4월 경북 칠곡에서 한 외국인 여성을 추행한 협의가 병합된 판결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 남성이 강아지를 성적으로 학대하면서 아무런 상해를 입히지 않았거나 피해자 측이 상해를 입증하기 힘든 상태였고, 여성 추행 혐의가 병합되지 않았다면 어떤 판결이 나왔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럴 경우 동물보호단체가 이 남성은 혐의 없음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에는 동물에 대한 성적 학대는 동물학대의 유형으로서 명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기 이천의 사례처럼 국내에선 명백한 성적 학대가 확인된 경우도 가해자들은 성적 학대가 아닌 상해를 입힌 것으로 인해 처벌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3월 전남 나주에서 한 남성이 타인 소유 축사에 들어가 암소를 수간한 사건에서 법원은 동물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건조물 침입, 재물 손괴 등의 혐의로 벌금을 선고했다. 2018년 천안에서 한 남성이 암소를 수간한 사건에서도 비슷한 혐의가 인정됐다. 이처럼 국내에서 벌어진 동물 성 학대 사건의 가해자가 받은 처벌은 성 학대가 아닌 타인의 사유지에서 타인 소유의 동물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가 인정되면서였다.

이처럼 국내 동물학대죄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동물 성 학대와 관련해 외국의 입법례와 국내의 정책과제 등을 담은 보고서가 나왔다. 17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펴낸 ‘동물 성 학대 외국 입법례와 정책과제’ 보고서는 국내에선 아직 생소할뿐 아니라, 거론하기 불편한 주제로 여겨져 사회적 논의는 물론 관련 연구가 미비한 ‘동물 성 학대’와 관련한 첫 보고서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국내의 동물 성 학대 실태에 대해 “개인 소유지에서 자신이 소유한 동물을 대상으로 학대 행위를 했을 경우 아예 발견과 신고조차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해당 동물에게 신체적 상해를 입혔기 때문에 동물보호법에 근거해 처벌이 가능했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신체적 상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법원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판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처벌 수준이나 조치가 재범을 예방하기에는 매우 미흡한 수준이라는 것도 문제”라며 “사람을 대상으로 한 강제추행죄와 경합하여 성폭력 치료강의와 정신과 치료 수강 등을 명령한 이천 사례 외에 천안 암소 수간 사건 등 동물보호법 위반만으로 처벌받은 경우는 근거 규정이 부재해 치료 명령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수간이라 일컬어져 온 ‘동물 성 학대’는 주로 동물복지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생식기를 애무하는 행위, 질·항문·구강을 통한 삽입, 사람과 동물 상호 간의 구강과 성기의 접촉, 물체를 사용한 삽입, 동물가학증 등 다양한 행위를 포함한다. 일부 학자들은 동물과의 성적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상호 합의가 이뤄졌음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종간 성폭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의 주별 동물 성 학대 범죄 처벌 규정.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보고서를 보면 독일, 스위스, 영국, 미국 등 해외에서는 동물 성 학대 범죄를 명문화해 금지할뿐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도 이뤄지고 있다. 동물과의 성적 접촉을 동물학대로 규정해 처벌하는 동시에 학대를 당한 동물을 몰수하고, 학대자에게 심리치료를 명령해 반복적인 학대를 방지하는 등의 내용이다.

보고서에는 또 미국의 경우 모두 37개주에서 동물 성 학대를 중범죄, 또는 중범죄에 준하는 범죄로 처벌하고 있고, 12개주는 경범죄로 다루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미 연방수사국(FBI)도 동물 성 학대를 중범죄로 분류한다. 많은 주에서 동물과의 성적 접촉 자체를 금지하고 있고, 성적 행위로 인해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경우 가중처벌하고 있다.

형량도 매우 높은 편인데, 예를 들어 로드아일랜드주의 경우 ‘동물과 혐오스럽고 가공할 반자연적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는 7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뉴저지주의 경우 ‘동물에게 죽음이나 심각한 신체적 상해를 야기하거나 동물학대 전과가 있는 경우’ 3~5년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또 21개주는 동물 성 학대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정신 감정과 심리 치료 등을 받도록 하고 있다. 29개 주는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 동물 몰수 명령, 소유권 제한 명령, 거주·취업 제한 명령 등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부 주에서는 피해동물 이외에 피고인이 기르고 있거나 함께 거주하고 있는 다른 동물에 대해서도 법원이 몰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미국의 주별 동물 성 학대 범죄자에 대한 심리치료 관련 규정.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이처럼 선진국들이 동물 성 학대를 법령으로 강하게 규제하는 것은 동물의 복지를 높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동물 성 학대 범죄가 인간 대상 범죄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 범죄학자가 미국에서 1973~2015년 사이 발생한 동물 성 학대 관련 사건을 분석한 결과 동물 성 학대 범죄자 456명 중 52.9%가 인간 대상 성폭력, 동물 학대, 대인 폭력 등 다른 전과를 갖고 있었다. 33.2%는 아동 및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전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동물 성 학대로 기소됐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은 이전에 동물 성 학대로 체포된 전력이 없는 경우보다 재범률이 4배 이상 높았다. 범인 중 27.6%는 두 마리 이상의 동물을 학대했거나 같은 동물을 여러 번 성적으로 학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사건의 72.5%는 피해 동물이 범인과 같은 장소에 살고 있거나 범인이 알고 있던 동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국내에서 동물 성 학대가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과제로 먼저 “동물보호법에 동물을 성적으로 이용하는 행위, 즉 동물 대상 성범죄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을 마련해 동물의 피해를 예방하고 사회적 경각심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해 발생 여부를 불문하고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구를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동물과 성적으로 접촉하는 행위와 제3자로 하여금 접촉하도록 하는 행위, 동물을 대상으로 한 성행위를 사진, 영상물 등으로 촬영하거나 유포하는 행위 등을 금지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도 제시했다.

이어 보고서는 “동물보호법에 피학대 동물을 동물학대 행위자로부터 영구히 격리, 보호할 수 있도록 정부가 몰수할 수 있는 근거, 그리고 동물학대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위험이 있는 경우 동물 사육금지명령을 통해 피학대 동물 이외의 동물 사육 및 관리 등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 성 학대 범죄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동물 성 학대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에 대해 치료 목적의 장기적인 상담 및 교육 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내리도록 규정해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반복적인 학대 및 대인 범죄로의 확장을 예방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이 대표는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학대를 ‘동물의 몸에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로 정의하면서 동물의 고통을 ‘몸에 관한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며 “고통, 공포,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행위도 동물 학대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 프로필

주로 환경, 생태, 기후변화, 동물권, 과학 분야의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에서 열공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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