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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 죽일 것 같다"는 112허위신고? 1심 무죄, 2심 유죄[서초동 법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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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6.14. 오전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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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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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22일 오후 5시. 서울 관악구의 한 파출소에 살인을 '예고'하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A씨(58)가 경찰에 전화해 여자친구 B씨에 대한 자신의 범행 계획을 직접 밝힌 것이다. 그는 "지금 죽이러 갈 테니까, 도저히 못 참겠어요. 여기 동네에서 사건이 날 거예요"라고 말했다.

사건 당일 A씨는 3차례 경찰 상황근무자와 통화를 했고, 위치와 인적사항 등을 묻는 질문에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오늘 죽여버리겠다"고 답한 채 전화를 끊기도 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같은 달 6일 B씨가 A씨로부터 폭행을 당해 신고를 했던 일이 있었기에, 경찰은 B씨가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했다. 파출소 경찰관 6명과 경찰서 강력팀 경찰관 5명 등 10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경찰관들은 B씨의 주거지 근처와 A씨의 휴대전화 발신 위치 주변으로 출동했고, 2시간40분가량 수색 및 탐문 작업을 벌인 끝에 A씨를 찾아냈다.

A씨는 관악구의 한 재래시장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경찰 수사를 받게 된 그는 "화가 나서 그런 것이지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형법상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그를 재판에 넘겼다. 허위신고 또는 장난전화로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한 경우 통상 이 죄로 처벌된다. A씨가 계속 술을 마실 생각이었을 뿐, 실제 B씨를 찾아갈 계획조차 없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B씨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거나 신고 자체가 '허위'였음을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경찰 조사에서 신고 이유에 대해 '제가 이성을 잃어서 그랬나 봅니다' '한 번쯤은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 적이 있을 겁니다'라고 진술했다. 이 사건 16일 전엔 B씨에 대한 폭행 사건이 신고되기도 했다"고 무죄 판단의 배경을 밝혔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리고 2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3부(재판장 김진영)는 최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A씨의 신고는 허위가 맞는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상황근무자와의 3차 통화에서 피고인은 '신경 쓰게 해 죄송하다'고 말했다"며 "피고인은 당시 B씨의 위치를 몰랐다. 위치를 알아내려고 시도했다는 근거도 없다. 신고 이후 술집에서 계속 술을 마셨을 뿐"이라며 "'죽이겠다'는 과장된 표현으로 보이고, 실제로 B씨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겠다는 의사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건 처리를 위해 적지 않은 경찰 인력이 투입됐고, 경찰관들은 현장 주변을 수색 및 탐문하는 등 허위 신고란 점을 알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대응조치까지 취했다"며 "피고인의 허위신고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신체, 안전을 보호해야 할 경찰력이 낭비됐다.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국민들이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엄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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