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반발 우려되지만, 기준 정립도 난색
인터넷 공간과 카카오톡이 발달하면서 초성을 이용한 모욕이 잊을만하면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과거 당사자를 직접 거론하지 않고 지칭하기 위한 용도로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던 초성 표현이, 이제는 명사나 대명사로까지 다방면으로 사용되는 것인데요.
불특정 다수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인터넷 게시글이나 댓글, SNS 등에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모욕죄’ 성립 여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 ‘법조인싸’는 최근 있었던 초성 표현 모욕 여부 판결과 의미 등을 짚어봅니다.
A씨는 2017년 12월 대구시 수성구 자신 집에서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에 접속해 ‘손XX의 아침스트레칭’이라는 글에서 “ㅅㅅ할 때 분명 저 자세로 하겠지? 아…서 버렸다”라는 댓글을 적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A씨는 재판에서 해당 댓글 ‘ㅅㅅ’은 세수를, ‘서버렸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의미라며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재판부는 “게시물 내 사진, 일련의 댓글 및 A씨가 작성한 댓글을 종합해 보면 A씨가 작성한 댓글의 내용은 피해자에 대한 성적 비하 내지 성적 대상화의 의미를 내포하는 모욕적 표현으로 보기에 충분하다”며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 서울북부지법에서는 단체 채팅방에서 ‘ㅂㅅ’이라고 적었더라도 직접 욕설을 한 것이 아니어서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시민단체 회원이었던 B씨가 2020년 10월 해당 단체 대표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언쟁을 벌이던 중 “ㅂㅅ같은 소리”, “ㅂㅅ아” 라는 표현을 담은 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건인데요. 1심 재판부는 ‘ㅂㅅ’이라는 표현이 ‘병신’과 동일하다고 판단했지만, 2심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문언상 ‘ㅂㅅ’과 ‘병신’ 양 표현이 일치하지 않아 이를 완전히 동일시 하기 어렵고, 욕설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의 언행에 대응하면서 부정적 감정을 표현한 정도로 본 것인데요. 2심 재판부는 “부정적·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이 담긴 경미한 수준의 표현에 불과할 뿐 피해자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우선 개인 간 카카오톡이 공연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잘 알려졌죠. 하지만 3인 이상의 카톡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법무법인 이공의 양홍석 변호사는 “카톡의 경우 3인 이상이 참여하는 대화방, 오픈채팅방 등에서 한 표현이나 인터넷게시판에 올린 게시글은 통상 공연성이 인정되는 걸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둘째,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명을 명시하지 않거나 초성 또는 이니셜만 사용한 경우라도, 종합적으로 그 표시가 피해자를 지목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면 피해가 특정되는 것으로 보죠. 최근에는 뉴스 댓글이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초성으로 지칭하더라도 피해자 특정이 인정되는 추세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모욕·명예훼손 여부입니다. 모욕의 사전적 정의는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 중 단순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욕설‘로 표현하는 것’인데 상당히 모호하죠. 양 변호사는 “모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한 해석과 판단을 해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일관된 기준을 세우는 것은 요원해 보입니다. 개별 사안별로 사실 관계가 다양해 사법부 차원에서 통일된 기준을 정하는 게 오히려 경직된 판결을 양산하는 독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양 변호사는 “‘초성 표현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규칙이나 기준을 설정해 해소하기 어려운 문제”라면서도 “당사자들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대법원이 판결로 한 번 정리해줄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