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법썰

[서초동 법썰]브레이크 실수로 승급길 막힌 항공기 기장

입력
수정2023.04.03. 오후 12:41
기사원문
김대현 기자
TALK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가벼운 과실이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 무거운 징계가 내려진 것은 부당합니다." 모 항공사 A기장은 국토교통부의 징계 처분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2021년 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2020년 4월25일 여객기를 조종해 이륙 직전, 견인 차량이 항공기를 뒤로 미는 '뒤로 밀기'(Push Back) 과정에서 항공기 브레이크를 잘못 조작해 비행기를 세우는 바람에 조종사 자격증 효력이 '15일 동안' 정지됐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8만원짜리 볼트 파손했는데 '조종사 자격 정지'까지


사건 당시 A기장은 견인차가 뒤로 밀기를 위해 항공기를 미는 과정에서 순간적인 착각으로 '파킹 브레이크'를 작동했다. 그러자 항공기는 갑자기 섰고, 견인차랑은 계속 진행하다가 둘을 연결하는 안전핀과 견인봉 연결 볼트 2개가 파손됐다. 나중에 부품 교체 비용은 '8만원' 정도가 들었다. 탑승객 137명은 항공기에서 내려 후속 항공편에 나눠 탔다.

A기장이 속한 항공사의 조종사운영교범 운항규정에 따르면, 비상 상황을 제외하고 뒤로 밀기 중 브레이크를 사용해선 안 된다. 국토교통부 측은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A기장의 '운송용조종사 자격증명'에 대한 효력을 보름간 정지시켰다.

항공안전법은 '국토부가 (기장이 소속한 항공사의) 운항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항공종사자의 자격증명 등의 효력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A기장은 "운항규정이 뒤로 밀기 중 사용을 금지한 브레이크는 '파킹 브레이크'가 아닌 '페달 브레이크'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항공기 브레이크엔 페달 브레이크와 파킹 브레이크 두 종류가 있다. 국토부는 둘 다 항공기를 정지시키는 기능이기 때문에, 파킹 브레이크 역시 뒤로 밀기 중 작동이 금지된다고 봤지만, A씨는 자신이 손으로 작동시키는 파킹 브레이크만 사용했고 발로 밟는 페달 브레이크는 쓰지 않아 국토부 처분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조종사의 15일 자격정지… 얼마나 무거운 징계일까?


A기장은 결국 국토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A기장 측은 "브레이크 작동은 단순한 착오 때문이었고, 피해액도 8만원짜리 볼트 경미했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특히 "국토부가 과도한 징계를 내려 앞으로 심사관(교관)을 할 수 없게 되는 등 불이익이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항공사에서 심사관이 되는 것은 '승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후배 조종사들의 교육 훈련을 담당하고 관리 감독의 역할도 수행하는 일종의 '명예직'으로 불린다. 심사관의 경우 비행시간의 35~40%가 가산될 뿐만 아니라 보직 수당도 추가돼 연봉이 크게 오른다.

◆기장 "가벼운 과실" 주장했지만… 법원 "중대한 과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 부장판사)는 "A기장의 브레이크 오작동은 중대한 과실"이라며 국토부 처분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우선 재판부는 "공공성이 강한 항공 운송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조종사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생명·신체와 재산을 보호하는 지위에 있다. 항공기 안전에 관한 높은 수준의 주의 의무가 있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비행기 손상 정도나 수리 비용 등만 보면 A기장의 실수가 실제 운항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면서도 "물적 피해가 경미하다는 사정만으로 징계할 수 없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항공편으로 갈아타야 했던 '탑승객들의 불편함'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2018년 뒤로 밀기 중 브레이크 작동 사고를 일으킨 다른 기장의 경우 '30일'간 자격증명 효력정지 제재 처분을 받게 된 점도 언급됐다. 당시 사고에선 파킹 브레이크를 작동으로 견인봉이 부러졌을 뿐만 아니라 항공기 전방 착륙장치와 접촉돼 앞바퀴 타이어와 견인 연결부가 손상됐는데, 이를 토대로 재판부는 "뒤로 밀기 중 브레이크 오작동이 항공기 안전에 미치는 위험은 작지 않다"고 강조했다.

운항규정이 언급한 브레이크엔 파킹 브레이크도 해당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페달 브레이크는 조종사가 발로 누르는 압력에 따라 점진적으로 작동하지만, 파킹 브레이크는 항공기를 순식간에 제동시키므로 위험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또한 "교관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사정 등을 충분히 고려해도, 국토부의 A 기장 15일 조종사 자격정지는 징계권 남용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A기장이 항소하지 않아서, 1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기자 프로필

TALK

유익하고 소중한 제보를 기다려요!

제보
구독자 0
응원수 0

아는 것은 안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겠습니다. 아시아경제 김대현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