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오 송금한 돈에서 빚 액수 뺐다면···“반드시 횡령죄는 아냐”

이혜리 기자
법원 모습. 연합뉴스

법원 모습. 연합뉴스

채무자가 실수로 계좌 송금한 돈에서 채권자가 합의 없이 채무액을 공제했더라도 형법상 횡령죄가 무조건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A씨의 횡령 혐의를 유죄로 보고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지난달 29일 파기했다.

A씨가 이사로 있는 주류업체는 주류를 납품받은 B씨가 대금 110만원을 주지 않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B씨에게 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지만 B씨가 이의를 제기해 조정이 진행됐다.

그러던 중 B씨가 착오로 A씨 업체 계좌에 470만원을 송금했다. 이에 A씨는 대금 110만원을 뺀 나머지 360만원만 B씨에게 돌려주고 소송은 취하했다. B씨는 ‘잘못 보낸 돈’이라며 110만원을 다시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A씨는 상계(서로의 채권·채무를 같이 없애는 것)할 수 있으므로 110만원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A씨가 횡령죄를 저질렀다며 재판에 넘겼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한 때 처벌하는 죄목이다. 수사 과정에서 A씨는 B씨에게 110만원을 돌려줬고 결국 A씨 업체가 소송을 다시 제기해 법원에서 B씨가 110만원을 A씨 업체에 주라는 조정이 이뤄졌다.

A씨에 대해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로 판단했다. 2심은 어떤 예금계좌에 돈이 착오로 잘못 송금돼 입금된 경우 예금주가 임의로 인출해 소비하면 횡령죄라는 대법원 판결을 A씨 사례에 적용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착오 송금된 돈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상계하자는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470만원 전체를 B씨에게 그대로 반환해야 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B씨가 돈을 A씨에게 돌려주지 않은 것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 횡령죄 성립요건인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불법영득의사란 타인의 재물을 자기의 소유인 것처럼 처분할 의사를 말한다.

대법원은 민사소송에서 법원이 B씨에게 지급명령을 하는 등 A씨 회사가 대금 채권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고, 상계권 행사가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이나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A씨가 11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즉시 반환했고, B씨에게 상계한다는 의사를 충분히 밝힌 점도 감안했다.

대법원은 “A씨가 반환을 거부한 이유와 주관적인 의사를 살펴보면 불법영득의사를 갖고 반환을 거부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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