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고정 안 된 1루 베이스에 ‘미끌’…야구장, 배상책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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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10.01. 오전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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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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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야구는 주자가 1, 2, 3루를 거쳐 홈 베이스를 밟으면 점수를 얻는 스포츠입니다. 그런데 타자가 안타를 치고 달려간 1루에, 베이스가 ‘두 개’ 놓여져 있었다면 타자는 어느 쪽을 밟아야 할까요. 주자가 잘못 놓여진 베이스를 밟고 넘어졌다면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타자 눈앞에 놓인 베이스 두 개…밟은 순간 ‘미끌’

사회인 야구팀에서 야구 경기를 즐기던 A 씨는 경기도 소재 한 야구장에서 시합에 출전했습니다.

이 야구장은 2020년부터 1루 베이스에 기존의 베이스 외에 안전 베이스를 추가로 설치해 2개의 베이스를 운용하는 곳이었습니다.

타자가 1루로 질주하다 수비하는 1루수와 부딪히지 말라는 취지인데, 해당 야구장은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운영규정까지 뒀습니다.


또 이 규정에서 명시적으로 정하지 않은 사항에 관해서는 한국야구협회(KBO) 공식 야구 규칙서에 따르고 있었습니다.

1루 베이스에 관한 규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야구장에 설치돼 있던 기존의 1루 베이스는 KBO에서 정한 베이스 사양에 맞도록 푹신한 재료를 안에 넣은 뒤 내야 안쪽 바닥에 단단히 고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추가로 설치한 안전베이스는 모양과 재질은 기존의 1루 베이스와 동일했지만, 1루 라인 바깥에 설치돼 바닥에 고정시키지 않은 ‘이동형’이었습니다. 타자 주자가 안전 베이스를 밟는 경우 미끄러질 우려가 있었습니다.

A 씨는 2020년 4월 해당 야구장에서 경기를 하면서 번트를 대고 1루 베이스로 전력 질주했다가 이동형 안전베이스를 밟고 넘어졌고, 목을 다치는 등 전치 8주의 상해를 입었습니다.

A 씨는 2020년 6월 “야구장이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했다”라며 야구장 주인 B 씨와 운영실장 등을 상대로 5,700여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 법원 “A 씨 이미 이동형 베이스 설치 사실 알아…야구장 책임 50%”

1심 서울중앙지법은 야구장 운영자 B 씨가 A 씨에게 3,160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사고 영상을 보면 원고는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번트를 대고 전력 질주해 1루수가 밟고 있는 고정형 베이스 옆의 이동형 베이스를 밟았다가 그대로 넘어져 크게 다쳤다”며 “원고가 다친 이유는 이동형 베이스를 밟고 미끄러졌기 때문일 뿐 누구와 충돌한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베이스는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야구장 측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이어 “1루 베이스의 경우 타격을 마친 타자들이 빠른 속력으로 달려와 베이스를 밟게 되므로 베이스가 딱딱한 재질로 되어 있거나 바닥에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달려온 타자가 베이스를 밟을 때 미끄러지거나 발목을 다칠 우려가 있다”며 “타자와 1루 수비수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안전베이스를 설치하더라도 그 안전베이스 또한 기존 베이스와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 바닥에 ‘고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B 씨는 “A 씨의 무리한 플레이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A 씨가 사고 직전 1루수로 경기를 해본 적이 있는 등 이동형 베이스 설치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동형 베이스를 밟다 사고를 당했다”며 B 씨의 책임을 60%로 제한했습니다.

야구장 측은 항소했고, 2심은 A 씨 본인의 책임을 추가로 인정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3-2민사부는 “사고 2주 전 야구장에서 1루수로 경기해 해당 베이스가 이동형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거로 보인다”며 야구장 책임을 50%로 제한해 A 씨에게 2,800여만 원만 배상하라고 판단했습니다.

항소심은 “공격과 주루 및 수비를 하는 과정에서 그에 따르는 부상이 위험이 내재된 운동경기에 참가한 원고로서는 그로 인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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