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유족 울린 ‘변호인 재판 불출석 패소’…재심 가능할까?

입력 2023.04.0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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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학교 폭력 피해로 스스로 세상을 등진 박주원 양.

이듬해 박 양의 어머니 이기철 씨는 가해자 측과 학교 등 38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1심에서 일부 승소한 후 항소심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씨는 지난주 원고 패소로 판결이 확정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1심에서 일부 승소했지만, 원고 측 항소가 취하돼 패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유족을 대리한 권경애 변호사는 자신이 재판에 불출석해 소송이 취하됐다고 털어놨습니다.

이미 패소 판결이 확정된 지 5개월이 지나서였습니다.

권 변호사는 지난해 9월과 10월, 11월 등 3차례에 걸친 항소심 재판에 모두 불출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민사소송법은 항소심에서 재판의 양쪽 당사자가 3회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항소를 취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에 따라 1심에서 손해배상 청구권이 인정되지 않은 이들에 대한 패소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고, 이 씨는 같은 피고들을 상대로 다시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수 없게 됐습니다.

8년의 소송이 한 푼도 배상받지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나 버린 겁니다.

■ 바늘구멍 같은 재심…가능할까?

이 씨가 걸어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재심입니다.

재심이란 법원의 확정 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경우, 당사자의 청구에 따라 그 판결을 다시 심리하는 3심제의 예외적 절차입니다.

이미 굳혀진 사실관계를 뒤집는 만큼, 법에 정해진 사유를 엄격히 충족시키는 경우에만 재심을 열 수 있는데요.

민사소송법이 정해둔 재심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민사소송법 제451조(재심사유)
①다음 각호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확정된 종국 판결에 대하여 재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1. 법률에 따라 판결법원을 구성하지 아니한 때
2. 법률상 그 재판에 관여할 수 없는 법관이 관여한 때
3. 법정대리권ㆍ소송대리권 또는 대리인이 소송행위를 하는 데에 필요한 권한의 수여에 흠이 있는 때
4. 재판에 관여한 법관이 그 사건에 관하여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때
5. 형사상 처벌을 받을 다른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아 자백을 하였거나 판결에 영향을 미칠 공격 또는 방어방법의 제출에 방해를 받은 때
6. 판결의 증거가 된 문서, 그 밖의 물건이 위조되거나 변조된 것인 때
7. 증인ㆍ감정인ㆍ통역인의 거짓 진술 또는 당사자신문에 따른 당사자나 법정대리인의 거짓 진술이 판결의 증거가 된 때
8. 판결의 기초가 된 민사나 형사의 판결, 그 밖의 재판 또는 행정처분이 다른 재판이나 행정처분에 따라 바뀐 때
9. 판결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판단을 누락한 때
10. 재심을 제기할 판결이 전에 선고한 확정판결에 어긋나는 때
11. 당사자가 상대방의 주소 또는 거소를 알고 있었음에도 있는 곳을 잘 모른다고 하거나 주소나 거소를 거짓으로 하여 소를 제기한 때

사실상, 이러한 사유들이 있다면 정상적인 재판이라고 볼 수 없는 명백한 하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재심 청구를 하더라도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입니다.

'판결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판단을 누락한 때(제9호)'라는 항목이 있지만, 법률대리인의 업무 태만으로 인해 소송이 확정된 경우가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는 판례는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가능성은 낮으나, 권 변호사가 직무를 태만히 한 부분으로 만약 형사 처벌까지 이르게 될 경우 '판결에 영향을 미칠 공격방법의 제출에 방해를 받은 때'에 해당해 재심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재심을 제외하고 이 씨에게 그나마 간접적인 구제 수단이 남아 있다면, 불성실한 변론으로 패소 원인을 제공한 변호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 정도입니다.

■ 변호사 불출석으로 소 취하…10년간 '9건'

대한변호사협회는 권 변호사에게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법상 변호사 징계 종류는 아래에서 보듯 총 다섯 가지로 정해져 있는데요.

변호사법 제90조(징계의 종류)
변호사에 대한 징계는 다음 다섯 종류로 한다.
1. 영구제명
2. 제명
3. 3년 이하의 정직
4.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
5. 견책

KBS 취재 결과, 2013년부터 올해까지 쌍방 불출석으로 소송이 취하돼 변호사가 징계를 받은 사례는 총 9건이었습니다.

징계 내역을 살펴보면 △견책 처분을 받은 변호사가 1명 △과태료 4명 △정직 3명 △제명 1명으로, 변호사의 업무 태만으로 인해 소 취하가 된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그때마다 징계 수위가 달랐던 셈입니다.

2016년 소송 불출석으로 의뢰인의 소송을 취하시킨 변호사는 가장 가벼운 '견책' 처분을 받았는데, 해당 변호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의뢰인에게 배상을 모두 마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가장 무거운 '제명' 징계를 받은 변호사는 소송 불출석으로 인한 소송 취하에 그치지 않고, 수임료를 의뢰인에게 반환하지 않은 데다, 미등록 사무장을 고용해 사건을 수임하게 시키고, 협회에 보고 없이 분사무소를 낸 의혹까지 동시에 받았습니다.

변호사 징계를 담당하는 대한변협 측은 "의뢰인의 피해 회복이 되어 처벌을 원하지 않는지, 이를 혹시 숨기려 했는지, 그 외에 별도로 법령이나 회규를 어긴 것이 드러났는지 등이 징계 과정에서 종합적으로 고려된다"고 밝혔습니다.

권 변호사의 경우 불출석으로 인한 소송 취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패소 사실을 미고지한 점 △책임 소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 △의뢰인의 피해 회복이 되지 않은 점 등이 있어, 변협이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변협은 앞으로 조사위원회를 꾸려 권 변호사의 징계 혐의에 대한 조사에 나설 전망입니다. 다만 변협의 징계 결정에 대해서는 법무부 징계위원회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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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폭 유족 울린 ‘변호인 재판 불출석 패소’…재심 가능할까?
    • 입력 2023-04-07 14:49:33
    취재K

지난 2015년 학교 폭력 피해로 스스로 세상을 등진 박주원 양.

이듬해 박 양의 어머니 이기철 씨는 가해자 측과 학교 등 38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1심에서 일부 승소한 후 항소심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씨는 지난주 원고 패소로 판결이 확정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1심에서 일부 승소했지만, 원고 측 항소가 취하돼 패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유족을 대리한 권경애 변호사는 자신이 재판에 불출석해 소송이 취하됐다고 털어놨습니다.

이미 패소 판결이 확정된 지 5개월이 지나서였습니다.

권 변호사는 지난해 9월과 10월, 11월 등 3차례에 걸친 항소심 재판에 모두 불출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민사소송법은 항소심에서 재판의 양쪽 당사자가 3회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항소를 취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에 따라 1심에서 손해배상 청구권이 인정되지 않은 이들에 대한 패소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고, 이 씨는 같은 피고들을 상대로 다시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수 없게 됐습니다.

8년의 소송이 한 푼도 배상받지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나 버린 겁니다.

■ 바늘구멍 같은 재심…가능할까?

이 씨가 걸어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재심입니다.

재심이란 법원의 확정 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경우, 당사자의 청구에 따라 그 판결을 다시 심리하는 3심제의 예외적 절차입니다.

이미 굳혀진 사실관계를 뒤집는 만큼, 법에 정해진 사유를 엄격히 충족시키는 경우에만 재심을 열 수 있는데요.

민사소송법이 정해둔 재심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민사소송법 제451조(재심사유)
①다음 각호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확정된 종국 판결에 대하여 재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1. 법률에 따라 판결법원을 구성하지 아니한 때
2. 법률상 그 재판에 관여할 수 없는 법관이 관여한 때
3. 법정대리권ㆍ소송대리권 또는 대리인이 소송행위를 하는 데에 필요한 권한의 수여에 흠이 있는 때
4. 재판에 관여한 법관이 그 사건에 관하여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때
5. 형사상 처벌을 받을 다른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아 자백을 하였거나 판결에 영향을 미칠 공격 또는 방어방법의 제출에 방해를 받은 때
6. 판결의 증거가 된 문서, 그 밖의 물건이 위조되거나 변조된 것인 때
7. 증인ㆍ감정인ㆍ통역인의 거짓 진술 또는 당사자신문에 따른 당사자나 법정대리인의 거짓 진술이 판결의 증거가 된 때
8. 판결의 기초가 된 민사나 형사의 판결, 그 밖의 재판 또는 행정처분이 다른 재판이나 행정처분에 따라 바뀐 때
9. 판결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판단을 누락한 때
10. 재심을 제기할 판결이 전에 선고한 확정판결에 어긋나는 때
11. 당사자가 상대방의 주소 또는 거소를 알고 있었음에도 있는 곳을 잘 모른다고 하거나 주소나 거소를 거짓으로 하여 소를 제기한 때

사실상, 이러한 사유들이 있다면 정상적인 재판이라고 볼 수 없는 명백한 하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재심 청구를 하더라도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입니다.

'판결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판단을 누락한 때(제9호)'라는 항목이 있지만, 법률대리인의 업무 태만으로 인해 소송이 확정된 경우가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는 판례는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가능성은 낮으나, 권 변호사가 직무를 태만히 한 부분으로 만약 형사 처벌까지 이르게 될 경우 '판결에 영향을 미칠 공격방법의 제출에 방해를 받은 때'에 해당해 재심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재심을 제외하고 이 씨에게 그나마 간접적인 구제 수단이 남아 있다면, 불성실한 변론으로 패소 원인을 제공한 변호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 정도입니다.

■ 변호사 불출석으로 소 취하…10년간 '9건'

대한변호사협회는 권 변호사에게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법상 변호사 징계 종류는 아래에서 보듯 총 다섯 가지로 정해져 있는데요.

변호사법 제90조(징계의 종류)
변호사에 대한 징계는 다음 다섯 종류로 한다.
1. 영구제명
2. 제명
3. 3년 이하의 정직
4.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
5. 견책

KBS 취재 결과, 2013년부터 올해까지 쌍방 불출석으로 소송이 취하돼 변호사가 징계를 받은 사례는 총 9건이었습니다.

징계 내역을 살펴보면 △견책 처분을 받은 변호사가 1명 △과태료 4명 △정직 3명 △제명 1명으로, 변호사의 업무 태만으로 인해 소 취하가 된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그때마다 징계 수위가 달랐던 셈입니다.

2016년 소송 불출석으로 의뢰인의 소송을 취하시킨 변호사는 가장 가벼운 '견책' 처분을 받았는데, 해당 변호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의뢰인에게 배상을 모두 마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가장 무거운 '제명' 징계를 받은 변호사는 소송 불출석으로 인한 소송 취하에 그치지 않고, 수임료를 의뢰인에게 반환하지 않은 데다, 미등록 사무장을 고용해 사건을 수임하게 시키고, 협회에 보고 없이 분사무소를 낸 의혹까지 동시에 받았습니다.

변호사 징계를 담당하는 대한변협 측은 "의뢰인의 피해 회복이 되어 처벌을 원하지 않는지, 이를 혹시 숨기려 했는지, 그 외에 별도로 법령이나 회규를 어긴 것이 드러났는지 등이 징계 과정에서 종합적으로 고려된다"고 밝혔습니다.

권 변호사의 경우 불출석으로 인한 소송 취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패소 사실을 미고지한 점 △책임 소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 △의뢰인의 피해 회복이 되지 않은 점 등이 있어, 변협이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변협은 앞으로 조사위원회를 꾸려 권 변호사의 징계 혐의에 대한 조사에 나설 전망입니다. 다만 변협의 징계 결정에 대해서는 법무부 징계위원회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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