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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학교폭력도 유전무죄, 무전유죄? 기술자들의 학폭 소송 전략

"처벌 수위만 좀 낮춰드리면 되는 거죠?
교사 출신 변호사님도 계시고, 학폭 전문 변호사님도 계셔요.
다들 감경 처분받으려고 저희 같은 전문가들 찾아오시는 거죠." (A 법무법인)

최근 서초동에 '학폭 전문'을 내세워 홍보하는 법무법인이나 변호사 사무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학폭 전담팀'을 만들어 운영하는 사례들도 꽤 있는데요. 일부 법무법인은 홈페이지에 '학교폭력 가해자 성공 사례'를 모아놓고 홍보하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수차례 고백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여학생 사진을 음란 사진과 합성해 친구들에게 전파한 중학생 사건. 법무법인은 가해 학생 부모님에게 행정 소송을 통해 다퉈보자고 제안한 뒤 학교폭력 전담팀을 통해 법원에 의견서를 수차례 제출해 전학 조치를 취소시켰다며 '우수 사례'라고 소개합니다. 같은 반 다문화 학생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혼혈 새끼야", "잡종 새끼야"라는 욕설을 하며 폭행한 사례, 같은 반 여학생 신체 부위를 '우발적으로'(?) 만진 사건도 모두 성공적으로 전학 취소 처분을 받아냈다는 홍보 글도 있습니다.
 

기술자들의 학폭 소송 전략…"졸업까지만 시간 끌면 깨끗한 학생부"

변호인석, 변호사, 법정 (사진=연합뉴스)

학교폭력 소송이 이제 법률 시장에서 하나의 사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녀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처분 이력이 남는 걸 막기 위해 소송전을 불사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정부는 지난 2011년 대구에서 중학생이 집단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자 2012년부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처분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했습니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학폭위가 가해자에게 내릴 수 있는 처분은 1~9호까지 있는데요(1호는 서면 사과, 9호는 강제 퇴학), 1~3호 처분을 제외하고는 생활기록부에 기재되고 일정 기간이 지나야 삭제됩니다. 9호인 강제 퇴학 처분의 경우는 생활기록부에 영원히 남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폭위 처분이 생활기록부에 기재돼 입시에 영향을 끼치는 걸 막기 위해 가해자 측에서 행정소송까지 진행하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3호 (학교 봉사) 이하 처분으로 감경받기 위해서라도요.

물론 학폭위 처분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려 징계를 받았다 소송 끝에 구제받는 사례도 있고요. 하지만 행정소송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시간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소송을 거는 경우입니다. 대표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게 학폭위 처분 집행 정지 신청입니다. 집행 정지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처분 효력을 잠시 멈추는 결정을 말합니다. 일단 법원에 집행 정지를 신청한 뒤 본안 소송 절차를 진행하면서 학생부 기재를 지연시키는 겁니다. 학교 폭력 피해 학생의 법률대리인을 주로 맡아온 박상수 변호사는 "담당 변호사 변경 신청, 감정 신청, 기일 변경 신청 등 시간을 끌며 3심까지 가면 3년은 그냥 흐른다"며 "졸업까지 끌게 되면 가해자는 학폭 기록 하나 없는 깨끗한 학생부로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이것만 성공해도 성공 보수가 꽤 두둑하게 나온다"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학교폭력 사건 전문 변호사는 "대학 입시의 경우 보통 10월까지의 생활기록부가 반영되는데 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면 판결이 확정돼야 생활기록부에 올라간다"며 "그렇기 때문에 일단 소송을 걸고 반영이 안 된 상태에서 학교를 선지원하고, 합격하면 나중에 판결이 나오더라도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가수사본부장직 취임 직전 아들의 학폭 문제로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의 경우도 아들이 강제 전학 처분을 받았지만 재심 청구부터 대법원까지 1년 넘게 이어지는 행정소송을 벌였단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요즘 자주 활용되는 다른 수법들이 또 있다고 합니다. 합의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해지기 위해 가해자 측이 일단 '맞학폭'을 제기하는 건데요. 학폭을 무마하거나 신고를 포기하게 하려고 일단 본인이 신고 당하면 '맞학폭'으로 상대방을 같이 신고해버리는 겁니다. 이 밖에 교장 차원에서 사건을 종결하지 않고 학폭위로 사건을 보냈다며 가해자 측이 교사들을 무고죄로 고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나중에 무혐의를 받게 되더라도 한번 고발 당해 수사를 받게 되면 교사들로서는 자연히 학교 폭력 사건 처리에 소극적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 로펌은 1천만 원 단위서 시작" 경제력·정보력 뒷받침돼야

그렇다고 아무나 이런 법률적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겠죠. 또 다른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심급당 최소 500만 원에서 700만 원 정도 수임료를 받는 걸로 알고 있다"며 "가해자 쪽은 비용을 아끼지 않는 편인데 대형 로펌의 경우 1천만 원 단위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아이의 입시 문제, 즉 앞길이 달린 문제라 생각하고 돈을 쏟아가며 적극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부모의 정보나 경제력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거죠. 가해자 측에서 소송을 제기하면서 최종 결론까지 시간을 끄는 게 입시를 위한 일종의 전략이 된 셈인데 피해자 측이 속수무책 당하다 뒤늦게 법률사무소를 찾아오는 사례도 꽤 있다고 합니다. 학교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 측이 치료비나 정신적 손해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순 있지만 형사 절차가 아닌 민사 절차라 국선 변호인 제도가 따로 없어서 변호사를 선임해야만 합니다.

가해자 측에서 소송으로 시간을 끌게 되면 피해 학생 측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분리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지난 2021년부터 학교장이 학폭을 인지한 경우 최대 3일간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분리할 수 있는 '즉시 분리 제도'가 시행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 측에서 각종 수단을 동원해 소송으로 시간을 끌 경우엔 최소 수 개월에서 길게는 수년간 가해 학생과 분리되지 못한 채 학교생활을 해야 합니다. 학폭위에서 전학 등 징계 처분이 나더라도 가해 학생이 불복해 행정소송을 하게 된다면 이들의 징계는 무기한 유보되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

소송 막을 순 없겠지만…피해 학생 권리 보장·신속 심리 등 보완책 필요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소송을 막을 수 없겠지만,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우선 피해 학생 보호와 권리 보장을 위한 수단을 적극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데요. 가해 학생 측에게 불복, 구제 수단을 줬으면 피해 학생에게도 그에 합당한 수단을 충분히 보장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집행 정지 과정에서 피해자 심문을 의무화하는 방안 등이 대표적입니다. 전수민 변호사는 "가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했을 때 피해자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며 "피해 학생 측에 소송 사실을 고지하고 소송 과정에서 충분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해자 측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가해자가 원고, 교육지원청이 피고에 해당하는데, 피해 학생은 제3자로 원칙적으로 관련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분리를 제도적으로 강화하고 피해 학생 지원 방안을 확대할 필요가 있단 지적도 나옵니다. 김용수 변호사는 "학교장 권한으로 접촉 및 협박 금지, 학급 교체 처분을 장기간으로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법원이 학폭 사건의 경우 최대한 신속하게 심리해 판단을 내려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학교폭력 사건을 전담해 심리하는 단독 재판부를 3곳 지정했습니다. 학폭 사건은 지금껏 판사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에서 심리했는데요. 사건은 늘고, 신속한 처리가 필요하단 이유에서 단독·전담재판부를 지정한 겁니다. 전문가들은 2차 가해 최소화를 위해서 법원이 최대한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게 현실적인 대안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박상수 변호사는 "설령 가해자 측에서 집행 정지를 신청해도 학교폭력 본안 소송만큼은 법원에서 빠르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학폭 소송이 일부에서 악용되고 있다고 해도 소송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순 없습니다. 재판 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이고 당사자가 처분에 불복하는 절차를 없앨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의 부모가 거금을 들여 변호인을 수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학교폭력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인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완책과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댈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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