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12월 말에 양부모로부터 분리돼 보호기관에 있던 A군을 만났습니다. 또래(초등학교 4학년생)보다 많이 작았고, 빼빼 말라 있었습니다. 때가 덕지덕지 묻은 점퍼, 밑창이 다 닳아서 곧 바닥에 구멍이 생길 듯 한 운동화, 뒤통수에 세로로 길게 난 흉터를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경찰은 양모가 숟가락을 세워 때려서 난 흉터로 추정했습니다.
처음에 아이를 만났을 땐 학교 선생님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 모두 학대를 알면서도 방관한 게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그건 아니더군요. 학교 교사들과 아동보호기관 직원은 1차 신고 때의 솜방망이 처벌, 그리고 2차 신고 때의 불기소 처분 때문에 섣불리 신고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신고를 해봤자 경찰과 법원이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또 풀어줘 아이 본인과 주변 사람 모두 곤란하게 될까 염려했던 탓이지요. 또 양모가 신고를 당한 후엔 처벌이 두려워서인지 몸에 멍이 들 정도로는 때리지 않고 그냥 원룸에 방치하는 형태로 학대했기에 피해가 명확히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도 신고를 주저한 이유였습니다.
창원지법 재판부는 지난 17일 “양부모가 A군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관계를 유지하려는 명목으로 A군을 사실상 배제, 고립시켜 희생하게 하는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부모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렸다, 피고인들의 이러한 행위는 A군에게 평생 큰 상처로 남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양부모 모두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앞서 검찰은 징역 2년 6월을 구형했고, 제 주변 법조인들은 대부분 실형 선고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양부모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는 판결이라니요.
판사는 “양부모가 잘못을 일부라도 인정하고 있고, 부양이 필요한 미성년 자녀가 한 명 더 있으며 A군의 정서적 치유를 위해서는 보호기관 및 전문가와의 협의 하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집행유예 사유를 설명했습니다. A군 누나를 돌봐야 하고, A군을 위해서도 양부모를 수감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심지어 양부모에게 A군의 정서적 치유를 위한 노력을 주문하다니, 판사가 사건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판결 아닌가요.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로 숨진 아이는 17명, 방임으로 사망한 아이는 16명입니다. 방임 역시 신체적 학대 못지않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극단적 학대라는 걸 법원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서 학대는 아동의 정신 건강, 행동발달, 자아 존중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리게 하는 인격말살의 범죄입니다.
석 달 전 다시 만난 A군은 키가 한 뼘도 넘게 컸고 피부도 뽀얘졌습니다. "우리 집"이라 부르는 보호시설이 제공한 멀끔한 운동화를 신고 있으니 학대받은 아이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머리만은 기를 쓰고 깎지 않으려 한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뒤통수 흉터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였습니다. 이제 제법 규칙도 잘 지키고 웃음도 늘었지만 간간이 돌발적으로 거친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직접 물었더니 “숨 막히고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 그랬다”라고 합니다. 상습적 학대는 이렇게 아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A군은 “엄마 아빠가 와서 사과했으면 좋겠다”면서도 “절대로 엄마 아빠한테 돌려보내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A군 양부모는 선고 후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제 질문에 끝내 답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