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 된 양육비 감치 제도…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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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3.26. 오전 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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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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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뒤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감치(監置)' 제도는 그나마 기대볼 수 있는 가장 단단한 기둥이다.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이행명령을 받고도 90일 이상 돈을 주지 않는 이에게, 가정법원은 최대 30일까지 구치소나 유치장에 가두는 감치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인신을 구속할 수 있다니, 생각보다 강력한 제재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감치까지 가는 길이 워낙 멀고도 험한 데다, 감치결정을 받았더라도 실제 집행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드물기 때문이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감치명령 신청은 421건, 인용은 250건으로 인용률은 60%가 채 안 된다. 더 문제는 집행률이다. 250건 가운데 실제 집행에 성공한 건 단 25건, 10%에 불과하다.

어제(25일) 서울가정법원 앞에는 허울뿐인 감치 제도 앞에서 절망한 양육자들이 모였다. 이들이 겪은 감치 제도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1 기각

우선 10명 중 4명은 법원의 감치결정 자체를 받아내는 데 애를 먹는다. 양육비를 안 주고 있는 게 확실한데 법원이 왜 감치명령을 내려주지 않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위장전입'이다. 전 배우자의 실거주지를 찾지 못해 소송 자체가 진행이 안 되는 경우인데, 고의적인 회피 가능성이 크다.

공시송달(법원이 송달할 서류를 보관해 두었다가 당사자가 나타나면 언제라도 교부할 뜻을 법원 게시장에 게시하는 송달방법)로 진행될 경우 양육비 미지급의 고의성을 입증해내기가 더 어렵다.

양육자는 여기서부터 발로 뛰기 시작한다. 전 배우자가 어디에 사는지 지인부터 SNS까지 모두 동원해 찾아본다. 그래도 끝내 못 찾는 경우가 많다. 연락이 닿아도 실거주지를 찾는 건 또 다른 문제다.

15년째 홀로 두 딸을 키워온 A 씨, 이혼 후 생사조차 알 수 없던 전 남편을 경찰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찾아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고, 최대한 열심히 일해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양육비를 주겠다는 다짐도 받아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약속은 어겨졌고, A 씨는 이행명령을 받은 뒤 3년 만인 지난해 5월 감치를 신청했다. 분명 본인 입으로 등본상 주소지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법원에서 보낸 소송 서류는 매번 폐문부재(집에 아무도 없음)로 반송됐다. 주소 보정을 거쳐 특별송달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송달료만 거듭 지출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5개월 만에 재판이 공시송달로 진행됐다. 7개월 만에 기일이 처음 지정됐다.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판사 앞에서 호소했다.

결과는 기각. 그게 올들어 지난 1월이다.

“이 사건 기록 및 심문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피신청인에 대한 이행명령 사건 및 이 사건이 공시송달로 진행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신청인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피신청인이 이행명령의 존재를 알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주문과 같이(=기각) 결정한다.”

A 씨는 전남편이 고의로 소장 송달을 거부하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고 말한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인데 주변에서 감치결정을 받아낸 사례도 눈에 띄었다.

A 씨는 "결국 감치 인용과 기각은 판사의 재량"이라며 "아이들의 생존권이 판사의 재량에 좌지우지되어야 하고 아이들의 생존권보다 양육비 채무자의 기본권이 우선으로 고려되는 지금의 현실에서 더는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 집행 실패

일단 감치결정은 받아냈지만, 실제 집행에 실패하는 사례도 흔하다. 역시 같은 이유다. 전 배우자가 거주지에 있을 가능성은 그야말로 희박하다.

게다가 수많은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에게 양육비 감치 집행은 뒷전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양육비이행관리원 직원으로 구성된 현장지원반이 꾸려지기도 했지만, 인력 부족으로 효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벌써 고3이 되어버린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 B 씨. 지난해 11월, 드디어 10일짜리 감치명령을 받아냈다. 전 남편의 집에 경찰이 두 차례 출동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 시아버지가 "1년 전부터 아들이 집에 안 온다"고 말했고, 경찰은 그 길로 돌아갔다.

다시 공은 양육자에게 돌아온다. 위장전입 신고부터 주소보정까지 모두 양육자의 몫이다. 감치 집행은 6개월 내로 이뤄져야 하는데, 속이 타는 것도 결국 양육자다.

B 씨는 "위장전입이 명백한 사건이라면, 게다가 경찰이 가서 확인도 했으면 바로 위장전입으로 처리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라며 "명백한 위장전입인데도 양육자가 입증할 자료를 가지고 직접 관할 동사무소에 직접 가서 신고를 접수하고 기다려야 하는 제도는 불합리하다"고 꼬집었다.


#3 이관 기각

이 과정에서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울에서 아들 둘을 혼자 키우고 있는 C 씨의 전 부인은 면접교섭으로 아이들을 만날 때도 거주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며 철저하게 집을 숨겼다.

지난해 3월부터 감치 소송을 시작했고, 폐문부재 4회, 수취인불명 3회에 이르렀지만 고의로 우편물을 회피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출해 결국 공시송달로 감치결정을 받는 데 성공했다.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 부인은 친정집으로 위장전입을 했고, 전 장모 역시 "그런 사람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감치 집행을 피했다.

C 씨는 어렵게 받아낸 감치가 무산될까봐 전전긍긍하다가 법원에서 조회해 준 카드 내역서를 토대로 인근 주택을 일일이 뒤졌다. 전 부인 소유 BMW 차량을 확인해 사는 곳을 파악하는 데까지 딱 한 달이 걸렸다.

감치 집행은 그동안 의정부 관할 경찰서를 통해서 했는데, 실제 발로 뛰어서 찾아낸 거주지는 강남구였다. 주소지 이관 신청을 해야 했다.

그런데 법원이 이 이관 신청을 기각했다. C 씨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양육자가 애써 실거주지를 찾아내고 법 집행을 할 수 있도록 협조한 것과 다름이 없는데, 정작 법원이 이것을 막아 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기나긴 감치 소송을 무엇 때문에 하도록 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C 씨는 "눈앞에서 감치 집행을 놓치고, 허무하게 끝냈다"며 "다시 처음부터 수년이 걸리는 소송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4 어이없는 실수

이보다 더 어이없는 경우도 있다. 14살과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D 씨는 지난달 15일 그토록 기다리던 첫 감치결정을 받아냈다. 꼬박 3년이 걸렸다. 집행장이 경찰서에 도달하자마자 여러 차례 전화해 조치를 촉구했다.

그런데 지난 7일, 황당한 소식이 들려왔다. 감치 결정문에 전 남편의 주민등록번호가 잘못 기재돼 집행할 수 없다고 했다. 전 남편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D 씨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로 잘못 적혀 있었다.

D 씨가 양육비이행관리원으로부터 받은 문자.

재빨리 경정해야 다시 집행에 나설 수 있는 상황. 그사이 전 남편은 방을 빼고 사는 곳을 옮겨버렸다. 잘못된 서류 때문에 어렵게 받아낸 감치 기회를 눈앞에서 놓쳐버린 것이다.

D 씨는 "법원에서는 감치 신청서 자체가 잘못 들어왔고 법원이 잘못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소송을 담당한) 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전자소송인 만큼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일치하지 않으면 신청조차 안 된다고 말한다"며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D 씨는 "정작 미지급자는 아무렇지도 않고 혼자 할 일을 다 하고 다니는데, 양육자 혼자 아이 키우랴 일하랴 소송하랴 시간을 쪼개서 쓰고 있다"며 "그 결과에 대해선 양육자만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5 그래서?

양육자들은 가정법원의 변화를 촉구했다. 공시송달로도 감치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감치결정의 문턱을 낮춰달라는 것이다. 관할 경찰서 이관 같은 실무절차는 신속히 허가해 집행에 발목을 잡지 말아달라고도 요구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적어도 정말 감치 재판 진행을 모르는지, 고의적인 회피인지는 법원이 살펴봐줘야 한다"며 "재판 기간이 길다 보니 기각이 될까봐 모두들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감치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의무 불이행 기간을 약 90일에서 30일 이내로 단축할 수 있도록 법무부와 협의해 가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또 위장전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사실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아직까지 가시적인 진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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