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소파에만 누워있는 남편, 이혼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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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94)

남편은 눈치가 없고 너무 둔합니다. 그리고 고집까지 셉니다. 친구들이 최악이라고 말하더군요. 제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화가 났는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에 다녀오고 저녁에 가급적 일찍 집에 오는데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저도 회사에 다닙니다. 탄력근무가 가능해서 집안일을 병행할 수 있어 계속 다녔는데 어찌 된 것이 저도 돈을 버는데 집안일은 온통 제 차지입니다. 제가 청소를 하고 있을 때 아이들과 밖에서 놀아주거나 학습지 푸는 것을 봐주면 오죽이나 좋을까요.
퇴근 후에 집에서 쉬기만 하는 남편. 아내도 맞벌이를 하지만 집안 일은 온통 아내의 몫입니다. 이혼 말을 꺼냈지만 남편은 이혼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남편이 이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할 수 없을까요? [사진 Pixabay]

몇 번 말을 해봤지만 왜 내가 해야 하냐고 반문합니다. 직장에서 힘들었다면서 소파에 누워 TV만 봅니다. 울화통이 터져서 싸움도 했지만 이제는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자기 말만 할 테니까요. 화가 나고 싸울 때 자연스럽게 이혼 말을 꺼냈습니다. 남편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이혼 사유가 있냐고, 어차피 법원에 가도 이혼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제게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를 보니 이혼을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남편의 재산상태도 자세히 알아야 하고, 아이들에게 확답도 받아둬야 할 것 같고요. 그런데 남편이 이혼하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할 수 없을까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요즘 부부의 이혼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가 화제죠. 우리나라의 이혼 법제가 원칙적으로 이혼을 구하는 상대방에게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경우에 이혼을 구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어서(이것을 유책주의라고 합니다) 상대방에게 이혼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이혼 사유가 있는지 없는지를 둘러싸고 법적 공방을 해야 합니다. 제법 긴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는 동안 남편이 이혼을 결심할 수도 있습니다. 사례자가 드는 사유만으로 이혼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례자의 주장이 그저 단순한 불화가 아니라 혼인관계가 파탄되었다는 것을 인정받고 그 과정에서 적어도 사례자가 남편보다 파탄의 책임이 적다면 이혼은 가능합니다.

부부의 이혼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 [JTBC 부부의세계 포스터]

이혼 다툼보다 아이를 서로 키우겠다고 다투는 양육권 분쟁이 어쩌면 더 힘들 수 있습니다. 이혼 재판을 하다가 심신이 피폐해진다는 말이 이해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혼 다툼보다 양육권 분쟁이 더욱 어렵습니다. 또 상대방이 이혼을 거부하지 않더라도 서로 양육권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본인이 양육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상대방의 흠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양육권 분쟁은 다시 서로의 유책을 주장 입증하는 싸움이 되어버립니다. 법원은 자녀의 이익이 되는 관점에서 양육자를 지정합니다. 부, 모 모두 훌륭한 양육자가 될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 더 자녀에게 좋은 쪽을 정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양육자를 정하는 분쟁을 상대방에게 화살을 쏘는 방법이 아니라 누가 누가 잘하는지 경쟁하는 방법으로 진행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확답을 받으려고 할까 걱정되어서입니다. 사례자가 이혼 재판을 결정하면 결론이 날 때까지 사례자 가정은 정서적으로 아주 힘드실 겁니다. 어른들은 나름 스트레스를 해소할 출구가 있어도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작아서 상대적으로 더욱 힘들어할 겁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에게 부모의 생각을 주입하게 되면 견디기 힘들 거에요. 저는 이것도 아동학대라고 생각합니다. 법원은 자녀의 의사, 자녀의 부모에 대한 태도도 매우 중요하게 보니 더욱더 사랑으로 대하시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남편의 재산 상태를 알면 더 좋겠지만, 꼭 완전히 알아야 소송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로서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재판을 통해 알아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혼은 분명 고통스러운 것인데 법이 그 과정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바로 고쳐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증폭되지 않도록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혼 법제를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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