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가해자 둔갑, 남편은 실직” 학폭 신고 후 1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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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3.14. 오전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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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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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학생 어머니, 고통스러웠던 소송 과정 털어놔
A군(17)이 2019년 8월 지방에서 열린 축구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소한 합숙소에서 동급생인 B군에게 폭행을 당해 앞니가 깨진 모습. A군 제공

17살 A군은 2019년 중학교 시절 동급생에게 학교폭력을 당했다. 하지만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A군이 그만 괴롭히라며 가해 학생을 밀친 것을 쌍방 폭행으로 판단했다. 1년 동안 괴롭힘을 당한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피해 학생 부모는 아들의 명예를 위해 해당 학교에 징계조치 처분 취소 소송을 냈고 지난해 11월 승소했다. 하지만 학폭이 남긴 상처는 너무 컸다. 아들은 심리치료를 다녀야 했고, 아버지는 가해 학생 부모의 음해성 투서에 직장을 잃었다.

피해 학생 어머니는 11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학폭을 신고하고 나서 너무 힘들었다. 남편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직장을 잃었다”고 울먹였다.

이어 “내 자식이 떳떳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며 “이번 일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금방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애들 다툼"… 피해 사실 숨긴 학교

A군은 2018년 11월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 축구팀으로 전학을 왔다. 그때부터 1년여간 가해 학생인 B군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가해 학생은 평소 학교에서는 조용했다가 합숙 기간에만 A군을 괴롭혔다.

2019년 8월 15일 경북 울진에서 열린 축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입소한 합숙소에서도 괴롭힘은 계속됐다. B군이 친구와 대화 중이던 A군에게 접근해 ‘돼지새끼’라고 놀렸고, A군은 거듭 그만하라는 의사를 표했다. 그런데도 B군이 놀리면서 접근하자 손으로 밀쳐냈다. 이에 화가 난 B군이 A군의 얼굴을 주먹으로 구타하고, 머리를 팔로 감싸 안고 조르며 넘어뜨렸다. A군은 치아가 일부 깨지고 얼굴에 멍이 드는 등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학교 측은 A군 부모에게 ‘아이들끼리 다툼이 있었다’고만 알렸다. A군이 다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심지어 A군을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았다.

A군 부모는 엉뚱한 곳에서 아들의 피해 사실을 듣게 됐다. 그날 밤 11시쯤 B군의 부모에게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안녕하세요. B군 엄마입니다. 코치에게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로 인해 댁 아드님이 다쳤다고 합니다.’ 문자 내용은 이게 끝이었다.

A군 어머니는 “아이가 다쳤으면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하고, 이후에 부모에게 연락한 뒤 학폭위 등 후속 조치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사건 초기에 학교 측이 아이가 다쳤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일이었다. 가해 학생 부모에게 아들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느냐”고 분노했다.

곧바로 감독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고, 코치를 통해 아이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코치가 찍어 보낸 사진 속 아들은 맞은 부위가 멍들고 부어올라 있었다.


어른들 무관심에 습관처럼 계속된 괴롭힘

다음 날 아침 남편과 함께 숙소를 찾았다. 아들은 치아가 깨지고 얼굴이 멍든 채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가는 길 내내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아들과 코치에게 들은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감독은 팀원들 앞에서 되레 피해자인 A군을 질책했다.

A군 어머니는 “감독이 아이한테는 ‘XX 새끼야, 마음 약해서 그렇게 얻어터지냐 반쯤 죽여 놓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게 아이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어 “아이들 앞에서 우리 애를 바보 취급한 거다. 우리 아들은 언제든지 맞아도 된다, 때려도 된다는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 아니냐”고 분노했다.

실제로 학폭 사건이 드러난 이후에도 가해 학생의 괴롭힘은 계속됐다. B군은 ‘15일 이후에도 왜 계속 피해 학생을 놀렸느냐’는 학폭위 위원의 질문에 “습관처럼 놀렸다”고 답했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B군에게 벌을 내리고 교육을 했다면 그 아이가 그런 생각을 했겠느냐”며 “학교와 어른들이 손을 놓는 동안 그 아이는 괴롭힘을 당연히 해도 되는 일로 여겼다”고 말했다.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한방에 재운 학교

가해 학생과의 격리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A군에 따르면 학폭이 발생한 당일 A군은 가해 학생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자야 했다. 어머니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바로 코치에게 따졌고 그제야 방을 옮겨줬다”면서 “아이가 이런 상황에도 경기를 뛰고 싶어 해 집으로 바로 데려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 부모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체육부장에게 “아이가 다친 건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그 부분이 잘 치유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체육부장은 대회가 끝나면 학교로 돌아가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을 내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보름이 지나도록 학교는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고 결국 A군 부모는 학교를 직접 찾아가 학폭위 개최를 신청했다.

가해자로 둔갑된 피해자

석 달이 지나 열린 학폭위는 해당 사건을 ‘쌍방 폭행’으로 판단해 B군에게 전학 처분을, A군에게 서면사과 처분을 내렸다. 맞은 학생을 향해 때린 학생에게 사과하라는 처분이 나온 것이다. 어머니는 “가해 학생이 괴롭힐 때 피해 학생은 어떤 방어도 취하면 안 되는 거냐”며 “놀리고 괴롭히는데 그걸 말로만 거절해야 하는 거냐. 이게 학폭으로 인정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거듭 물었다.

이후 법원은 A군을 무혐의로 처분했고, B군의 혐의만 인정했다. 미성년자인 B군은 소년부로 송치돼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A군은 학교를 상대로 징계조치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어머니는 “서면사과 처분은 졸업하면 생활기록부에서 자동 삭제가 돼 소송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면서 “하지만 아이의 명예를 위해 행정소송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학폭위 구성에 문제가 있다며 해당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냈다. 사건이 발생한 뒤로부터 1년이 넘게 흐른 시점이었다. 강서양천교육지원청도 뒤늦게 이 사건을 감사해 축구팀 감독 등 학교 관계자 7명에게 징계 등의 ‘신분상 조치’ 처분 결정을 내렸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가해 학생 부모 투서에 직장 잃은 남편

1년여간의 소송 끝에 A군은 ‘가해 학생’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학폭은 A군과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A군은 소송을 진행하면서 축구팀 감독과 사이가 틀어져 새로운 팀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어머니에 따르면 감독은 교육청 감사로 징계를 받자 ‘피해자 부모는 시끄러운 사람이다. 자식의 일을 침소봉대해 시끄럽게 한다’ 등 안 좋은 소문을 퍼뜨렸다.

사건 이후 A군은 전학을 시도했지만 몇몇 학교 축구팀에서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다행히 A군은 올해 축구팀이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해 다시 공을 차고 있다.

여파는 A군 부모에게까지 미쳤다. 고등학교 축구팀 감독이었던 A군의 아버지 C씨는 가해 학생 부모의 투서에 직장을 잃었다. 어머니에 따르면 가해 학생 부모는 남편의 직장에 “자식이 학폭 가해자인데 소송을 거는 등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투서를 보냈다. A군이 B군의 목을 졸랐다는 음해성 투서가 줄을 이었다.

계속되는 투서에 C씨는 재계약에 실패했다. 최종 심사까지 올라간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직에서도 떨어졌다. 어머니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설마 그런 풍문으로 계약이 취소되고 심사에 떨어질 줄 몰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현재 C씨는 축구부를 창단해 운영하고 있다.

승소에도, 전학에도 계속되는 비난

A군 가족은 다른 학부모들에게도 비난을 받았다. A군 동료 학부모는 SNS에 “쓰레기 가족 때문에 모든 선수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몇몇 학부모들은 A군 사건으로 당시 중학교 감독이 징계를 받자 “교육청 징계가 잘못됐다. A군 학부모가 나쁜 사람들”이라며 구명 집회까지 열렸다. 심지어 A군이 전학을 간 중학교에도 A군 가족을 비방하는 전화가 쏟아졌다.

어머니는 “아이가 표현은 하지 않는데 아빠가 실직하고 가족 전체가 힘들어진 상황에 많이 힘들어한다”며 “최근 대한축구협회 공정위원회에서 참석 요구를 받았는데 아들이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상기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힘들었던 시간… 그래도 후회하지 않아요"

A군 어머니는 “최근 다른 사건 피해자 부모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며 “학폭 신고를 고민하는 엄마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승소해도 큰 변화는 오지 않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피해를 봐 힘들어진다. 가족들의 지지가 없으면 너무 힘든 길이다. 그래서 쉬쉬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럼에도 아들의 학폭 사실을 알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후회를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가 힘든 건 참을 수 있지만 아이가 아픈 건 참을 수 없었다. 내 자식이 떳떳하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끝으로 “감독 등에게 나온 처분은 아쉽지만 학교를 상대로 소송에 이겼다는 부분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이번 일이 쉽게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다른 학폭 피해 가족들에게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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