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1명만 이혼 후 양육비 제대로 받았다···“악의적 체납자 형사처벌해야”

입력
수정2020.11.24. 오후 3:01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여성변회, 양육자 205명 조사
“법적대응해도 양육비 못받아”
상대방 버티면 약정도 힘들어


이혼 후 홀로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 가운데 10명 중 1명만 전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제대로 받았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4명 정도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고, 5명 정도는 일부만 받았다고 답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연구팀이 양육자 205명을 대상으로 양육비 지급 실태를 설문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여성변회는 지난 20일 심포지엄을 열고 설문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205명 중 여성은 191명, 남성은 11명이었다. 3명은 성별이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양육비를 제대로 수령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한 사람은 9.3%(19명) 뿐이었다. ‘한번도 받은 적 없다’는 답변은 38.0%(78명)나 됐다. ‘부정기적으로 일부만 수령했다’는 답변은 51.2%(105명)이었다.

양육비를 제대로 수령하지 못했다고 답변한 사람 중 법적 대응을 한 사람은 56.5%(105명)였다. 그러나 법적 대응 후에도 이들 중 73.3%(77명)은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연구팀의 강소영 변호사는 발제문에서 “법적 대응을 한 경우에도 양육비를 단 한 차례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한 양육 부모가 73.3%”라며 “가사소송법의 여러 제도에도 불구하고 양육비의 실제 이행 확보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비양육자 관련 삽화. 경향신문 자료사진.

양육비 액수 일방적 결정
‘운전면허 정지’ 제재 시행
79% “실효성 있다” 답변


법적 대응까지 이어지지 않은 경우에도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외부 요인 때문에 법적 대응을 못했다는 답변이 많았다. ‘법적 절차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 부담(23명)’, ‘법적 절차를 모름(9명)’, ‘현 제도에 대한 불신(6명)’, ‘양육비 채무자의 위장전입, 해외거주(4명)’, ‘양육비 채무자의 재산 은닉(2명)’, ‘양육비 감액 우려(2명)’ 등이다.

협의의혼 때 양육비 약정을 한 87명 중 25명은 진지한 협의과정 없이 비양육자가 일방적으로 양육비를 결정했다고 했다. “이혼 당시 너무 괴롭고 빨리 헤어지고 싶어서 준다는 대로 받아적었다”, “상대방이 1인당 50만원씩을 책정했고 그 이상을 부르면 이혼을 안 해주겠다고 해 50만원에 합의했다”, “남편의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고자 빠른 이혼을 원했고, 모두 양육자가 부담하는 것으로 협의할 수밖에 없었다” 등의 답변이 나왔다.

양육비 약정을 했어도 액수가 양육에 충분한 수준은 아니었다. 양육비 약정을 한 사람 중 58.6%(51명)는 양육비가 적정하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상당수가 양육비 변경 청구는 하지 않았다. 19명이 “이미 양육비 미지급 상태라 증액되더라도 지급받지 못할까봐”라고 답했다. “현재 50만원도 한번도 준 적이 없다”, “공증받은 40만원도 안 줄 사람이었고, 이혼한 지 11년째인데 지금까지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양육비를 3개월 받고 이제껏 못 받았기에 점점 쌓여가고 있고, 이행명령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서 증액신청을 할 시도를 안해봤다” 등의 답변이 있었다. 협의의혼 때 양육비 약정을 안한 이유로는 “양육비를 달라고 하면 상대방이 이혼을 거부하거나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할까봐”라는 답변이 많았다.

양육비 해결모임 회원들이 지난해 2월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양육비 헌법소원’ 심판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법원 중심인 양육비 이행 확보
“신속성 없고 결과 담보못해”
‘형사처벌 명확히 법 개정’ 목소리


연구팀은 양육비 확보를 법원 절차(지급·감치 등 명령, 과태료 부과)에 맡기는 한국 체제는 신속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지난 6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감치명령을 받았는데도 양육비를 주지 않는 사람에게 운전면허 정지처분을 내리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일정 한도 내에서 국가가 채무자에게 국세 체납처분에 준해 징수할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연구팀에 참여한 정희경 변호사는 발제문에서 “사법적 방식의 이행 확보는 양육비를 지급받기 위해 장기간 소송절차를 거쳤음에도 양육비 지급 이행을 담보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양육비 미지급 행위에 대한 행정적 제재를 강화해 양육비 채무자의 자발적 이행률을 높이고, 국가기관의 직접 징수 권한을 확대해 양육비 채무자가 오랜 기간 소송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방식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있지만 권한에 한계가 있어 제대로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 변호사는 “영국·호주·미국·독일 등 OECD 국가들 다수는 국가가 징수를 책임지는 형태를 취하고 독립적 조회·징수·고발 등 권한을 갖는 행정청을 두고 있다”며 “한국도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중심으로 행정적 권한을 통해 소재탐지·조회·징수·규제적 행정처분을 일원적으로 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양육비이행관리원이 법적 대응의 주체가 돼 양육비를 못받은 사람이 스스로 구제 절차를 거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가 양육비를 선지급하고 채무자에게 구상하는 이른바 ‘대지급제’도 계속 논의된다.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죄의 하나로 규정하고, 악의적인 양육비 체납자를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징수와 처벌을 위해서는 양육비 체납자가 한국에 있어야 하므로 출국금지 조치도 필요하다.

유엔아동권리협약 27조는 국가가 부모로부터 양육비를 확보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영국·호주·벨기에·폴란드 등 국가에서 양육비 체납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갖고 있다. 한국의 아동복지법에도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와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 있지만 실제 이 조항이 적용돼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는 드물다.

한국에선 매년 11만 건 가량의 이혼이 이뤄진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자낳세에 묻다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