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차량을 들이받고 그는 달렸다, 친구들이 울부짖어서[사람 구함 : 어느 피고인의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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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3.20. 오후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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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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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25일, 대구의 한 제조업체에 다니는 40대 직원이 출근길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태운 통근버스를 운전하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단속에 놀라 도망쳤다. “살려달라”는 이주노동자들의 절규에 ‘애들을 도망시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액셀을 밟고 말았다.

그는 단속차량 3대를 들이받아 파손하고, 출입국사무소 공무원 11명에게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혔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를 다치게 한 행위임을, 자신의 선택에 책임이 뒤따를 것임을 김 부장은 알고 있다.

사건의 개요, 김 부장의 행위는 명백하다. 하지만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이주민 이웃이 계속 늘고 있는 오늘날, 그의 사건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나. ‘일손이 없다’며 먼저 손을 뻗었으면서, 그들의 처지에는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가. ‘미등록 체류’가 되는 원인을 살피지 않고 강제단속·추방에만 몰두하는 게 맞는 길인가. 우리는 사람을 맞을 준비가 됐나. 함께 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사람을 도와보려다 피고인이 된 남자. 김 부장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날의 사건과 김 부장의 삶을 재구성했다.


지난 7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의 한 도로 횡단보도에 타이어 자국이 나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통근버스를 운전하던 김 부장은 지난해 8월25일 오전 7시25분쯤 이곳에서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단속에 마주쳤다. 조해람 기자


부지런한 공업단지 사람들 중에서도 E 공장 생산총괄 김 부장은 특히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다. 20여 년을 그렇게 일해 왔으니, 2023년 8월25일 금요일이라고 별다를 것은 없었다.

여름방학 마지막 주말을 코앞에 둔 두 아이의 배웅을 받으며 오전 6시쯤, 김 부장은 집을 나섰다. 대구 달성군 논공읍 공단으로 출근한 김 부장은 45인승 보라색 통근버스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중고 버스의 그르렁대는 엔진소리가 공단의 색 바랜 돌담을 울렸다.

‘태평양관광’ 상호가 후면에 흐릿하게 남은 버스를 몰고 김 부장은 읍내로 향했다. 상가건물들은 낡은 기계의 톱니처럼 곳곳이 비거나 녹이 슬었다. 한때 대구 인근에서 가장 큰 공업단지였던 이곳도 쇠락을 피하지 못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없었다면 공단 공장들은 오래전에 끝났을 것이었다. 청춘을 이곳에서 다 보낸 김 부장이 가장 잘 알았다.

버스는 읍내에 가까워졌다. 김 부장은 읍내 사거리에서 이주노동자들을 태워, 인근 유가읍의 E 공장 생산시설로 출근시키는 일도 맡고 있었다. 월 50만원의 추가수당으로 그는 네 가족의 생활비를 보태고 아픈 어머니의 용돈을 챙겼다.

지난 6일 오후 대구 달성군 논공읍 한 사거리에 구인 전단지가 붙어 있다. 아래 공고에는 ‘외국인 가능’이라고 적혀 있다. 조해람 기자


5층짜리 뉴욕모텔 옆, 사이공 아시안노래방 건물 앞 사거리에 E 공장 이주노동자들은 모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좋은 아침.” “부장님, 잘 잤어요?” 이주노동자들은 매일 한솥밥을 먹고 함께 커피를 마시는 김 부장을 부장님, 사장님, 또는 형님이라고 불렀다. 김 부장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에서 온 그들을 동생처럼 아꼈다.

이주노동자 36명을 버스에 태운 김 부장은 오전 7시8분, 공장으로 출발했다. 버스는 논공읍내를 빠져나와 5번국도를 달렸다. 아이들이 곧 개학이니 내일 함께 외갓집을 가야지, 오늘 납품일정은…. 머릿속으로 일과를 정리하며 김 부장은 버스를 몰았다. 검은색 아반떼가 버스 뒤로 따라붙었다.

오전 7시25분. 통근버스는 출입국사무소 단속반이 잠복하고 있는 유가읍 신축 산업단지의 한 좁은 도로로 진입했다.

◆ ◆ ◆


1983년에 조성된 공단보다 김 부장은 딱 한 살 많았다. 인근 소도시에서 태어나,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공단에 왔다. 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 때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며 아슬아슬한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어린 동생의 입학식과 졸업식은 오빠인 김 부장이 챙겼다.

어머니가 대구 공장에 취업하면서 형편이 조금 피려던 때, IMF 사태가 닥쳐 공장은 부도를 맞았다. 일자리를 잃은 어머니에게 고등학생 김 부장은 말했다.

“어머니, 전 공부는 관심도 없고, 자퇴하겠습니다. 새 일 구하시는 대신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허락해주세요.”

어머니는 반대했지만, 김 부장은 5만원을 들고 몰래 집을 나왔다. 피자배달, 신문배달, 막노동을 하며 어린 나이에 임금도 많이 뜯겼다. 집에 돌아온 김 부장은 열여덟에 공단의 한 공장에 취업했다. 오전 7시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 학교 가는 동갑내기들이 창 밖으로 보였다. 돈 벌자, 돈이나 벌자…. 되뇌이다 보면 공장이었다.

지난 6일 오후 대구 달성군 논공읍 달성공단 도로 위로 차량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조해람 기자


김 부장은 그곳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처음 만났다. 김 부장은 그들이 ‘꼭 나 같다’고 생각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향의 공단에서, 힘들게 번 돈으로 가족을 책임지면서, 그도 종종 ‘나 혼자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일머리를 인정받아 취업한 E 공장에도 그들은 있었다. 눈을 두는 곳마다 남 아닌 ‘나’들이었다. 등록이든 미등록이든, 정주민이든 이주민이든, 가족사진을 보여줄 때의 표정은 비슷했다. 김 부장은 그들과 빠르게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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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근버스는 큼직한 신축 공장들 사이를 지나, E 공장 앞 왕복 2차선 도로에 들어섰다. 길가에 주차된 차량들 사이에서 회색 스타렉스 승합차가 나타나 버스를 가로막았다. 김 부장은 놀라 속도를 줄였다.

읍내에서부터 뒤따라온 검은색 아반떼가 버스를 왼쪽으로 앞지르더니 운전석 옆에 붙었다. 근처에서 대기하던 또다른 회색 스타렉스가 버스 뒤에 섰다. 김 부장과 이주노동자들은 도로 위에서 포위됐다.

지난 7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 산업단지의 한 도로 옆으로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김 부장은 ‘살려달라’는 이주노동자들의 비명에 버스로 단속차량을 들이받고 도주를 시도했다. 조해람 기자


버스 정면 스타렉스에서 검은 조끼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내렸다. 그들은 버스를 향해 멈추라는 듯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법무부’ ‘特別司法警察’ ‘IMMIGRATION’. 세 가지 언어로 적힌 단어들이 그들의 등판에서 태양빛을 받아 번득였다. 공무원증을 든 남자가 운전석을 향해 걸어왔다.

“출입국사무소 단속반입니다. 외국인 신원 확인을 위해 협조 부탁드립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들이 쏟아졌다. 공포와 비명, 애원과 울음이 순식간에 버스를 삼켰다.

“살려주세요!” “노, 노!” “부장님! 도망가주세요!” “도망가요! 제발!” 김 부장이 모르는 외국 말도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불법체류자들이 있다’는 누군가의 제보 이후, 국가의 공무집행이 시작됐다. 김 부장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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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공장에서 김 부장은 삶의 뿌리를 내렸다. 세상을 원망하던 청년에게 사장은 아버지가 돼 줬다. 공장에서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그에게 또 다른 가족이 있다면, 하루 12시간씩 함께 일하고 밥먹고 쉬는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월급날 퇴근하자마자 ATM 기계로 달려가 고향에 돈을 보내는 그들은 젊은 김 부장이었다.

지난 6일 오후 대구 달성군 논공읍 달성공단 담벼락에 ‘기업하기 좋은 달성산업단지’라고 적혀 있다. 조해람 기자


김 부장은 종종 통근버스를 못 타고 택시로 출근한 이주노동자의 택시비를 챙겨줬다. 이주노동자들은 고향 부모님의 안부나 동생의 결혼 소식을 김 부장에게 전하곤 했다. 대부분 김 부장이 공장에 데려온 이들이었다. 몇 안 되던 한국인 청년들은 공단을 떠난 지 오래였다. 김 부장은 친한 이주노동자를 통해 이주민 커뮤니티에서 사람을 구하곤 했다.

구한 사람을 잘 보내주는 것도 김 부장의 일이었다. 어느 날 김 부장은 인도로 돌아간다는 노동자를 이마트에 데려가, 새 옷을 사라며 30만원을 쥐여줬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출국 당일 그는 김 부장을 찾아와 울었다. 그를 역까지 데려다주며 김 부장은 말했다.

“일하면서 내가 좋기만 했겠어. 서운한 게 있다면 잊어버리고, 비행기 잘 타고.”

그는 또 울었다. 기차를 타기 전 그는 ‘자녀에게 전해주라’며 김 부장에게 용돈을 건넸다. 손사래치는 김 부장에게 그는 ‘사람은 이래야 하는 거’라며 웃었다.

지난 6일 오후 대구 달성군 논공읍 E 공장 사무실에 위치한 김 부장의 자리가 비어 있다. 조해람 기자


주말이면 김 부장은 가끔, 그 용돈을 받은 아들을 조수석에 태우고 통근버스를 몰기도 했다. 김 부장은 아들에게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예전에는 저 친구들처럼 다른 나라에서 일해 돈 벌어왔다.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그러니 항상 감사하고, 외국사람 보면 불편해하지 말고 친해지라.” 공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말했다. “나랑 일하다가 집에 가. 다른 회사 가지 말고, 꼭 마지막에는 나랑 일하다가 가.”

‘잘 보내주는’ 일에 김 부장은 한 번 크게 실패했다. 2016년의 어느 날, 그가 외근을 나간 사이 공장에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사람들이 도망치고, 울부짖고, 담장을 넘으려다 붙잡혔다. 급히 돌아온 김 부장이 본 건 체념한 채 수갑을 찬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었다.

“고마웠어요.” 누군가 김 부장을 보며 말했다. 김 부장은 그 장면이 가끔 꿈에 나와 가위에 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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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주세요!” “살려주세요!”

아수라장이 된 통근버스에서, 김 부장의 무의식은 2016년의 그날을 떠올렸다. 머릿속이 허얘졌다. 김 부장은 후진기어를 놓고 액셀을 밟았다.

버스는 뒤편의 스타렉스를 쿵 들이받았다. 김 부장은 앞을 가로막은 스타렉스와 아반떼 사이로 버스를 직진시켰다. 버스는 아반떼 우측 펜더를 긁으며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버스를 제지하려던 공무원들이 넘어지고 다쳤다.

지난 7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 산업단지의 한 도로 인도에 타이어가 놓여 있다. 김 부장은 ‘살려달라’는 이주노동자들의 비명에 버스로 단속차량을 들이받고 도주를 시도하다가 이 도로 인근에서 체포됐다. 조해람 기자


버스는 왼쪽 길로 꺾어 달렸다. 스타렉스 두 대가 버스를 추격하며 계속 앞뒤를 막았다. 김 부장이 연 문으로 이주노동자 두어 명이 뛰쳐나가, 허겁지겁 달렸지만, 뒤따라온 공무원들에게 붙잡혔다.

스타렉스에 세 번 부딪히고서야 김 부장은 버스를 세웠다. 1분 동안 300m, 멀리 가진 못했다. 공무원들이 버스로 들어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검거했다. 이주노동자들은 곧 도착한 법무부 버스에 옮겨져 추방 절차를 밟기 위해 떠났다. 김 부장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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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은 혐의를 모두 인정했지만 구속됐다. 그가 이주노동자를 도망치게 한 것은 ‘증거인멸 시도’에 해당했다. 구속 1주일째인 2023년 9월4일, 김 부장은 대구지검 서부지청 8층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갑자기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도망가세요라고, 한국말과 자기 나라 말을 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그 순간 불법체류 단속을 나온 공무원이라는 것을 직감했고, 한 명이라도 도망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김 부장이 말했다.

“사장도 아니고 직원이면서, 왜 그렇게까지 위험한 행동을 했나요.” 검사가 물었다.

“같이 있던 애들 정도 많이 들었고, 걔들이 한국 올 때 3000만원 정도 들여서 들어오는데, 3년 정도 일해야 경비를 뽑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애들이 울부짖는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잘못한 일이니 다 인정합니다.” 김 부장은 다친 공무원들에게 치료비를 공탁했다.

지난 7일 오전 김 부장이 수감돼 있는 대구 달성군 하빈면 대구교도소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조해람 기자


정부의 단속이 점점 강화되고 이주노동자들이 외출을 줄여 가던 12월14일, 대구지법 서부지원에서 김 부장의 1심 선고기일이 열렸다. 판사는 출입국 공무원 11명에게 경추 염좌와 타박상 등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히고, 단속차량 3대를 들이받아 1512만7506원의 재산피해를 끼친 김 부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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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공장 사장과 지인 강 사장은 함께 다친 공무원들을 만나러 다니며 김 부장의 사정을 설명했다. 몇몇은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고 강 사장에게 말했다. 하지만 공무원이 공무집행방해죄를 합의해주기란 지침상 어려운 일이었다.

김 부장은 낙담한 채 교도소에서 한 달을 보냈다. 2024년 1월, 그의 인생에 예상 못한 일이 또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역 이주인권단체 관계자들이 김 부장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김 부장의 1심 선고를 다룬 단신 기사를 읽고 뜻을 모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김 부장의 사연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인권변호사를 수소문했다. 항소를 준비할 계획이었다. 재판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김 부장의 더 자세한 이야기가 법정에서 10분만이라도 다뤄지기를 그들은 바랐다.

1월15일, 사건을 새로 수임한 손나희 변호사가 접견장에 찾아왔을 때 김 부장은 울었다. 세상으로부터 처음 받아보는 도움이었다. 대구경북지역 독립언론 ‘뉴스민’이 힘을 보태며 항소심 직전까지 7000장이 넘는 탄원서가 모였다.

지난달 27일 오후 대구의 한 변호사사무실에 김 부장이 지난 1월15일 손나희 변호사를 처음 접견한 뒤 보낸 편지가 놓여 있다. 조해람 기자


2024년 3월6일 오후 2시35분, 김 부장의 첫 항소심 공판이 열렸다. 대구고법 별관 5층 법정 왼쪽 출입문으로 녹색 수의를 입은 김 부장은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그는 방청석을 흘깃 봤다. 이주노동자 노조인 금속노조 성서공단지회와 이주민인권단체 ‘이주와가치’ 관계자들, E 공장 사장과 강 사장이 그와 눈을 맞췄다. 김 부장은 손 변호사 옆 피고인석에 앉았다.

신원확인은 빠르게 끝났다. 사실관계 다툼도 없었다.

“새로 신청할 증거가 있습니까.” 판사가 말했다.

“달리 없고, 속행(재판 기일을 추가로 요청하는 것)입니다. 다음 기일에 10분 가량의 피고인 신문을 요청합니다.” 손 변호사가 말했다. 서류더미만 보고 있던 검사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10분 이내에 마치도록 준비하세요.” 판사는 4월3일로 추가 기일을 잡았다. 공판은 3분 만에 종료됐다.

김 부장은 일어나 왼쪽 출입문을 향해 곧바로 걸었다. 아이들과 어머니는 잘 계실까. 구해주지도, 잘 보내주지도 못한 이주노동자 동생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죄인이라 해도 그들까지 강제추방을 당해야 할 죄인이었을까. 사람을 구하고 살림을 도맡던 공장으로, 올해는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간다면…. 김 부장은 저벅저벅 걸어 문 너머로 사라졌다.

검사는 서류를 넘겼다. 판사는 지체없이 다음 재판을 시작했다.

지난 6일 오후 대구고법 별관에서 김 부장의 항소심 첫 공판을 방청한 ‘이주와인권’과 금속노조 성서공단지회 등 이주인권·노동단체 관계자들이 법원을 나서고 있다. 조해람 기자


◆ ◆ ◆


“제 생각엔, ‘불법체류’라고 하기엔…. 우리 같은 영세업체에는 다 걔들이 있어요. 걔들 없으면 일을 못 하는 게 지금 대한민국인데 보듬고 가야죠. 걔들이 칼을 들었나요. 무슨 죄가 있나요. 그런 거 아니잖아요. 인간입니다, 걔들.”
- -김 부장, 2024년 3월7일, 대구교도소 접견실에서 기자와 만나


“저도 가족도 친구도 하나 없이 달성공단에 와서 오직 돈 벌어야겠다, 내가 가장이니깐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홀로 버텼습니다. 그런 저랑 이주노동자랑 뭐가 틀린지 모르겠습니다.”
- -김 부장, 2024년 3월5일, 기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못된 제도가 미등록 체류로 내몰아···강제단속은 해법 아니다”[사람 구함 : 어느 피고인의 변론]
42만3000명.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다.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230만명의 18.4%는 미등록 체류자다. 2014년 처음 20만명을 돌파한 뒤 ...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150600011




김 부장을 돕는 대구경북지역 이주인권·노동단체들은 항소심 선고 전까지 그의 선처를 위한 탄원서를 받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탄원 참여 링크 ▶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Tiy6eWzPJAwkVOdmcCgjhJhg9ff8lKC1SLtqQatysbsjV2A/viewform?usp=sf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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