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휴일 근무 거부했다 해고당한 워킹맘…대법은 사업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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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2.10. 오전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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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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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한 고속도로.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1]

연중무휴 24시간 굴러가야 하는 영업소라 하더라도, 어린 자녀를 키우는 근로자를 굳이 공휴일에 일하게 하거나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낼 시간을 보장해주지 않는 건 사업주의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 의무 위반이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008년부터 고속도로 영업소에서 일해 온 A씨는 5살 터울로 두 자녀를 얻은 뒤에도 ‘워킹맘’으로 줄곧 일해왔다. 그런데 2017년 4월 용역업체가 바뀐 뒤 다른 사람들은 고용승계가 됐는데, A씨는 두 달 만에 채용을 거부당했다. A씨가 ‘무단결근’을 하고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는 ‘초번 근무’를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자녀 둘 워킹맘 “예전에도 6시 근무 빼 줬는데…”
이전 업체는 A씨의 초번 근무를 면제해 줬다. A씨가 만 1세, 6세 자녀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휴일에는 A씨가 연차휴가를 썼는데, 이건 다른 팀 일근제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새 업체는 A씨에게 어린이집 등원 시간에 외출을 허락해 줄 테니 초번 근무를 하라 했고, 공휴일에도 출근하라 했다.

A씨는 초번 근무는 받아들였으나 공휴일 출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해 4월엔 공휴일이 없어 넘어갈 수 있었지만 5월 1일 근로자의 날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A씨는 출근하지 않았다. 업체에 “오랜 근무형태를 하루아침에 변경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경위서를 냈다. 업체도 강 대 강으로 나왔다. 공휴일 근무를 안 하면, 초번 근무 시 외출도 안 시켜준다 했다. 이제 A씨는 초번 근무도 거부했다. 결국 업체는 A씨에게 ‘정식채용 부적격 결정 통보’를 했다.

“안 나와? 무단결근이네!” 결국 해고로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 [뉴시스]
일자리를 잃게 된 A씨는 노동위원회를 찾았고, 중앙노동위원회는 “본채용 거부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업체 쪽에서 법원을 찾았다. A씨와 업체 간 갈등은 이제 ‘부당해고가 맞다는 중앙노동위원회’ 대 ‘정당한 채용 거부라는 업체’ 간 다툼이 됐다.

1심 서울행정법원 14부(부장 김정중)는 중노위의 판정이 옳다고 했다(2019년 3월 선고). “실질적으로 A씨가 근로자로서의 근무와 어린 자녀의 양육 중 하나를 택일하도록 강제되는 상황에 처하게 했다”며 업체가 채용을 거부한 건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하지만 이는 7개월 뒤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부장 노태악)는 업체의 채용 거부가 합리적이라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휴일 여부를 불문하고 24시간 통행료를 징수해야 하는 회사 사정과 함께 회사가 외출을 허용해준 걸 중요하게 봤다. 재판부는 “(업체 입장에서) 공휴일에 A씨의 배우자가 양육하는 것도 가능하다 생각할 수 있으므로 A씨가 다른 가족이 양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지 않는 이상 업체로서 그런 사정을 먼저 파악하고 해결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회사가 일·가정 양립을 위해 이 이상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니란 거다.

“합리적 채용 거부”란 고법에 대법 “판결 다시 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하지만 4년 뒤, 대법원은 이를 다시 뒤집었다. 지난달 16일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업체가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를 다했는지 엄격한 기준으로 심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항소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노태악 부장판사는 대법관이 됐지만 대법원의 다른 소부(1부) 소속으로 이번 상고심 판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남녀고용평등법 19조의5는 만 8세 이하나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는 근로자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업무를 시작하고 마치는 시간의 조정, 연장 근로 제한, 근로시간 단축, 탄력적 운영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2부는 이를 근거로 “사업주가 육아기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한 배려의무를 부담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업체는 “영업주임이 순찰하거나 식사할 때 서무주임이 메워줘야 하기 때문에 (A씨의 공휴일 근무가) 필요하다”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단순 공백 보완을 위한 것이라면 공휴일 근무의 횟수·빈도·시간을 조절할 수도 있었고, 영업주임 4명 외에도 미납관리실 직원 7명이 있는데 서무주임인 A씨만이 공백을 보완할 유일한 근로자도 아니다”고 봤다.

대법원 공보연구관실은 이날 판결에 대해 “사업주에게 소속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인정한 판결”이라며 “기업이 육아기 근로자 자녀의 양육을 지원할 책무를 부담한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고 그 판단기준을 마련함으로써 향후 일‧가정 양립이라는 가치가 존중되는 방향으로 근로조건 및 노사관계가 형성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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