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1호 중대재해법 판결은 ‘유죄’…원청 대표 ‘집행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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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0.18. 오후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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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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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23일 오전 10시 10분쯤 제주시 아라동 제주대학교 기숙사 철거 현장에서 무너진 굴뚝이 굴착기를 덮친 모습.


산업 현장의 중대 사고에 대해 원청업체 최고경영자(CEO)와 임원까지 최소 1년 이상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주에서 처음 적용된 사고와 관련해, 원청업체 경영자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제주지방법원 형사2단독 배구민 판사는 오늘(18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제주지역 모 건설업체 대표이사인 60대 피고인 A 씨에 대해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현장소장 60대 피고인 B 씨에 대해선 업무상과실치사죄 등을 적용해 금고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현장책임자와 안전관리자, 감리 등을 맡았던 3명의 피고인에 대해서는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씩을 각각 선고했습니다.

A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건설업체에 대해선 8천만 원의 벌금형이 선고됐습니다.

2022년 9월 22일 KBS 뉴스7 제주

■ 기숙사 해체 작업 중 잔해에 깔려 사망…제주 첫 중대재해법 적용

공소 사실에 따르면 A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건설업체는 다른 업체들과 컨소시엄(공동이행방식)을 구성해, 임대형 민자사업(BTL)방식으로 제주대학교 생활관(기숙사)을 짓고 있습니다.

A 씨의 업체는 기존 생활관 철거 공사를 하청했고, 이를 맡은 제주지역 모 철거업체 대표 50대 남성은 지난해 2월, 공사 현장에서 직접 중장비로 기숙사 굴뚝 해체 작업을 하던 중 무너진 구조물에 깔려 숨졌습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중대 재해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대표이사 A 씨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또 현장소장 B 씨를 비롯해 현장책임자와 안전관리자·감리 등 5명에 대해서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지난해 2월 23일 오전 10시 10분쯤 제주시 아라동 제주대학교 기숙사 철거 현장에서 무너진 굴뚝이 굴착기를 덮친 모습.

■ 재판부 "공소 사실 모두 유죄…유족과 합의·처벌 불원, 양형에 고려"

이날 선고 공판에서 배 판사는 "공사현장에서 근로자가 숨졌고, 피고인들이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면서 "당시 일하고 있던 근로자와 유족 진술, 검안서와 조사 보고서, 이후 작성된 각종 공문서 등을 토대로 피고인들의 범행 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 피고인들이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이고 이전까지 별다른 처벌 전력이 없는 점, 또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 제반 사정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앞서 검찰은 대표이사 A 씨에 대해 징역 2년을, 현장소장 B 씨에 대해선 징역 1년 6개월을 각각 구형하고, 현장책임자와 안전관리자·감리 3명에겐 금고 1년씩을 구형했습니다.

■ 검찰 "앞으로도 엄정하게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이날 선고 이후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은 홍대겸 변호사는 기자들과 만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논쟁거리)가 되고 있고, 입법 취지에도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이 사건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피해자와의 합의' 등이 이뤄졌고, 이 같은 사실이 판결에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이번 제주대 기숙사 철거 사망 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지도 쟁점이었습니다. 현행 50명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건설현장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이 2년간 적용 유예됩니다.

2022년 9월 24일 KBS 뉴스7 제주

이에 대해 피고인들의 변호인은 "이 사건은 철거 공사만 봤을 때는 5억 원 이내 공사였고, 작업 인부 역시 50인 이내였기 때문에 (적용 여부를 놓고) 다툴 여지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모든 혐의를 인정하면서 피해 회복에 주력하고, 반성하며 재판에 임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제주지검도 이날 판결 이후 입장문을 내고 "사고 직후 신속하게 관계기관과 합동 압수수색을 집행하는 등 철저한 수사로, 원청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마련하지 않은 결과 현장 종사자가 사망에 이른 범죄사실을 규명했다"면서 "다만, 유족과 원만히 합의한 점을 고려해 불구속으로 기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앞으로도 원청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충실히 이행해, 종사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도록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안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하고, 공판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 기업계 "모호한 규정, 과도한 처벌…기업 존립 자체 위태로워져"

지난해 1월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산업 현장에서 근로자가 한 명이라도 사망하거나, 2명 이상이 중상을 입으면, 안전 조치 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경영자와 회사를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근로자가 숨질 경우, 1년 이상 징역형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형을 받습니다. 또, 다치거나 질병에 걸리면 7년 이하 징역형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대기업은 물론, 내년부터는 근로자가 5명 이상 있는 모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적용받는데, 경제계는 현행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 유예 기간을 2년 더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2022년 9월 24일 KBS 뉴스7 제주

이 법은 사업주(主)의 의무를 다소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업인을 과도하게 처벌한다"는 경영계 반발과 우려를 낳기도 했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제주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이번 사건 판결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다"면서 "법 시행 2년을 앞두고 있지만, 사망사고 감소 효과보다는 도리어 모호한 규정과 과도한 처벌에 따른 현장의 혼란과 기업 부담만 가중되는 실정"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어 "50인 미만 소규모 기업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법 적용 시기를 2년 더 유예하는 한편 법률상 경영 책임자의 범위와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경영자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합리적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 노동계 "합의하면 집행유예…중대재해법 취지 역행"

반면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취지에 역행하는 '솜방망이' 처분이라고 비판하며, 안전 사고에 대한 강한 처벌을 통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022년 9월 24일 KBS 뉴스7 제주

민주노총 건설노조 제주지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전국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서, 정작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거의 없다. (유족과) 합의했다는 이유로 모두 다 집행유예로 빠진다"면서 "이 같은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의미와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지금도 현장에 가 보면 바뀐 게 없다. 비용이 든다며 안전요원이나 신호수 같은 인력을 배치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한편 제주지방법원과 제주지방검찰청에 따르면 이번 1심 판결은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한 제주 첫 사례이자, 유일한 사건입니다.

제주경영자총협회는 도내 사업장의 중대 재해 예방 인식을 높이기 위해 오는 25일, 사업주와 근로자를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핵심내용과 사업장 대응 방안' 교육을 시행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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